독거노인의 삶

두서없음

물미역 2022. 4. 20. 08:43

요즘 정신상태가 부쩍 불안진게 느껴져서 다시 심리상담을 예약했다.

정신이 불안정해지면 일희일비도 굉장히 심해지는데 심지어 심리상담을 예약하는 과정도 그랬다. 

이번에는 상담센터를 좀 바꿔보려고 했는데

적장해 보이는 심리 상담소가 연결이 되자 상담만 받으면 고민이 다 해결될 것 같처럼 맘이 편안해졌다가, 

그 심리상담소에 예약 가능한 시간대가 거의 없자 내 인생이 그렇치, 이거저거 다 꼬이기만 한다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식이다. 

이 급격한 일희일비라니......정말 제 정신이 아니다.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에 영어 원서를 읽는 독서클럽도 시작했다.  

의외로 영어 원서를 읽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었고

(회사 문서나 논문을 읽는데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심지어 영어 원서를 읽자면 맘이 편해진기도 했다. 

나는 영어로 말을 하는 순간마다 내 주술구조나 단어나 표현이 맞는지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마가 뜨지 않게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발화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과정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제대로 되지 않은 문장을 발화하는 스스로에게 자괴감도 든다.

그래서인지 종이에 인쇄된 정제된 영어 문장을 눈으로 보고 읽을 때바다 느끼는 안정감이 있다. 

 

다른 나라 동료들과 하는 글로벌 프로젝트 때문에 미팅을 하는데, 

일 자체는 전혀 어려운게 아니었다.

그런데 동료들은 감을 잘 못 잡는 것 같던데 

(아무래도 일을 잘하는 편인 사람들은 아닌 듯)

회의 중간에 끼어들어서 감놔라 배놔라할 타이밍을 잡기가 무척 어려웠다. 

일단 그들이 말한 것을 내가 100% 이해했는지 확신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내가 봤을 때는 이거 빨리 이렇게 저렇게 해야되는데 향후 일정에 대한 논의 없이 회의가 끝나길래, 

회의 끝나고 이렇게저렇게 하자,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하께 라고 메일을 보냈다. 

회의 중간에 거의 말을 안해서 공동 프로젝트에 뭔가 기여를 하고 싶다는 티를 내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회신들이 엄서서 무척 우울해서 피아노 학원도 빠지고 집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사실 이건 핑계고 원래 피아노 학원도 빠질 생각이고 집에서 술도 마실 생각이었다._)

나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쓰레기이자 사회 부적응자인걸까 하는 우울한 생각으로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보니 좋은 생각인 것 같다고 그렇게 하자고 다들 답장들을 보내왔길래 다시 기분이 나아졌다. 

역시 제 정신이 아니야. 

 

일 떄문에 회사내 많은 부서들과 소통해야하는데, 보면 다들 무지하게 휴가를 가는 것 같다. 

옆부서 동료는 한달에 최소 1주~2주는 휴가 중. 

이 회사는 널럴한게 확실하고 다들 여유롭게 다니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리 항상 바쁜지 모르겠다. 

이 회사의 일 자체는 난이도가 낮은 편이라

내가 이정도 경력에 이런 수준의 일을 하고 있다는게 우울할 떄가 있지만

영어가 아직 원활하지 않으니까 영어 공부한다고 생각하면서 달래고 있다. 

 

박사 논문 보고 정부 위원회나 연구 기관에서 자문 해달라고 아주 가끔 연락이 온다. 

물론 자문이나 정부 사업 참여 내지 원고 작성이나 강의 등등은 회사 업무 직간접적 관련성으로 셀 수도 없이 많이 했지만, 

(한창 건이 많을 때는 이런 저런 알바건으로 일년에 천만원 넘게 번 적도 있음, 돈 떄문에 하는 건 아니지만....)

회사 업무가 아닌 박사 논문을 보고 연락이 오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다. 

후속 논문 빨리 써야 되는데 내가 지금 독서클럽 나부랑이나 하고 있을 떄인지 모르겠다. 

논문 만져서 국제 학술지에도 실고 해야 되는데 집에서 혼자 술이나 쳐먹고.....

연구 성과가 많아야 난중에 어케 교수 자리 나면 지원이라도 해보고 할텐데....

아니 내가 한 때 같이 일했던, 내 기준 전문성이 높지도 않고 일도 잘하는 편이 아니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바보가 아닌가 싶었거나 어떤 사람은 저렇게 책임감이라곤 없을수가 싶었음)

이 바닥 경력자랍시고 멀쩡히 교수 한자리씩 하고 있는 거면 다들 수완이 좋다 싶다. 

하긴 나도 멀쩡한 척 사회 생활하고 있는거 보면 인생이란 어떻게든 굴러가게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왜 이런 우울과 불안을 안고 힘들고 어렵게 무의미한 인생을 살아야하는지 모르겠다. 

작은 변화나 자극에도 부화뇌동하는 감정의 쓰나미에서 휩쓸려다니는 것도 지겹기 짝이 없다. 

원래 내 적성이나 성향에도 맞지 않는데 뭔가 생산적으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운동이니 피아노이니 논문이니 영어니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짜증이 난다.

이제까지는 밥벌이에 대한 압박감으로

멀쩡한 사회인인척 하며 회사를 통해 벌어들이는 근로소득으로 어떻게든 무마하고 넘어가왔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그마저도 영 효과가 떨어진다. 

그래서 일종의 대리만족으로다가 회사 때려치고 서점이나 까페 차린 사람, 알바하는 사람 등등에 대한 에세이를 자주 읽게 되는 것 같다. 

빨리 상담을 다시 시작해야지. 상담만 다시 시작하면 좀 나아질꺼야. 데헷헷.

 

아니. 이런 거 저런거 다 떠나서 50까지는 어떻게든 회사에 다닐 것이다!

짤리지 않는 것에 감사하며 다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