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미역 2020. 9. 19. 12:34

어제는 무척 바빴다.

하루에 해결해야 할 외주 건에 3건이나 되었고

논문 지도위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교수님 검토를 받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논문은 마치 살아 숨쉬는 생명체와 같아도 도통 끝이 나질 않고,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꾸 스스로 논리를 확장해 간다.

이러다간 이번 생에 완성하긴 글렀다.

그래도 다음주 논문 지도위는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번주 내내 크런치모드로다가 술도 못 먹고 회사 일을 위한 최소한의 시간만 제외하고는 논문만 쓰며 지냈다.

어제도 새벽같이 사무실로 출근해서 논문을 쓰다가, 피치에 몰린 외주일을 했다.

우선 정부지원 대상 기업을 선별하는 외주일을 하느라 무려 30개나 되는 기업의 자료를 들춰봐야 했으며, 

국가 자격제도의 자격 시험 구성안을 검토했어야 했고 틈틈히 회사 일도 쳐내야 했다. 

금요일은 오전 근무만 하는 날이라서, 근무 시간이 끝나자마자 외주 강의를 하러 스튜디오로 갔다.

단발성 강의는 돈 때문이 아니라,  이 바닥이 워낙 복잡하다보니 나도 전체 그림은 자꾸 까먹는지라, 

가끔 강의하면서 한번씩 스스로 정리해두려고 하는 편이다. 

물론 대부분의 외주 작업이 돈 때문에 하는 건 아니고, 작업을 요청하는 사람과의 관계나 내 스스로의 공부 차원에서 하는 것들이다.

돈을 많이 벌 생각이었다면 C사를 갔어야지.

여튼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 강의는 거의 없고

온라인 강의를 하는데 상대방의 반응을 보지 않고 하는 언택트 강의는 참 하기 어려운 것 같다.

강의를 끝내고 나왔는데 진행자가 약간 불만족스런 표정이라 찜찜한 마음으로 교수님을 만니뵈러 학교로 갔따.

학교로 가는 길에 부랴부랴 논문 고치고 연구실에서 논문을 인쇄하고 교수님에게 논문 지도를 받았다. 

지난번에 교수님이 내 논문 보고 하도 짜증을 많이 내셔서 두근반 세근반 했는데, 

이번에는 논문을 한장도 들춰보지 않으시고 내가 요약해간 연구문제 변경 이력가지고만 애기하셨따.

지난번만큼 야단을 맞지는 않았지만 결과론적으로 참 후진 연구 방법이 되었다는 말이. 

너무나도 사실이었기에 조금도 상처를 받지 않았다. 

교수님 면담을 마무리 하고 두레관으로 가서 주차증을 연장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금요일 저녁이라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데 무려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집으로 오는 길에 모 포탈의 담당자가 나랑 일하던 쏘시오 패쓰 직원이, 

자기네 계열사에 면접 보고 있는데 어떻냐고 물어보는 카톡이 왔다. 

평소에는 잊고 지냈는데, 그 문자를 보니 그 쏘시오패스에게 수년간 당했고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찾아왔던 몇년간의 기억들이 한꺼반도 또 몰려와서

외주와 논문으로 어수선한 마음이 진흙창처럼 흐트러졌다. 

잘살든 못 살든 관심없고 웬만하면 내 인생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 간혹 소식이 들어온다. 

작년에 불미스럽게 회사를 떠나고 부랴부랴 옮긴 회사가 적성에 맞지 않는지

올해 부지런히 이직을 시도하는지 이번이 벌써 두번째 제보였다. 

그렇다고 개 정말 쏘시오패쓰라고 절대 같이 일하면 안된다고 애기하면

그 쏘시오패쓰가 나중에 또 나한테 헤꼬지 할까봐, 

그냥 아..네...참...머라..드릴..말씀이...하고만 보냈다. 

사실 정말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막힌 도로를 뚫고 귀가하는 길은 참으로 외롭고 쓸쓸했다. 

집에 돌아갔을 때 고단한 하루의 일상을 들어줄, 

쏘시오패쓰가 남긴 트라우마에 아직도 시달리는 나의 고충을 들어줄, 

파트너든 뭐든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 사는 것이고 결혼을 해도 외롭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혼자서 일상의 모든 것을 감내할 떄 느끼는 외로움만큼 무겁진 않을 것이다.

집에 왔더니 온기를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네이버 스마트 쇼핑에서 주문한, 모 유튜버가 강추한 곱창 전골이 와 있어서, 

밥을 짓고 곱창 전골을 끓여 간만에 집에서 혼술을 했고 잠이 들었는데, 

잠을 엄청 많이 잤는데도 불구하고 도통 멍한 기운이 가시질 않는다, 

몇주째 논문이랑 외주 때문에 무리했기 때문인지, 

그 쏘시오패스 떄문에 안좋은 기억들이 몰려오기 때문인지 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