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밥
1.
요즘 읽고있는 이 책은 녹즙배달원을 하는 알콜중독 30대 여성에 관한 소설인데 일종의 칙릿이라 볼 수도 있지만 나름 한예종 출신의 작가 유망주로 실제로 알콜 중독을 겪다 녹즙 배달 사원으로 중독을 극복한 작가의 생생한 경험이 깔려 있어 그런지 잼나게 읽고 있는 중이다.
특히 작중 알콜중독 화자가 음주의 기쁨과 각종 술에 대한 묘사가 탁월한데 그 중의 으뜸은 단연코 소맥에 대한 서술이다. 생각해보면 한창 마실 30대(20대의 술은 가볍고 40대 이상의 술은 건강이 걸리적거리지. 30대야말로 술을 마시기에 최적의 체력과 마인드에다가 경제력까지 갖췄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30대들이여. 술을 마시라.) 에 가장 최애술이 소맥이었는데 코로나로 회식도 엄서지고 소맥을 마신지도 꽤나 오래된 것 같았다. 책을 읽는데 소맥이 무자게 먹고 싶었음.

2.
오늘은 한달에 한번 열리는 독서클럽 모임이 있는 날이다.
멤바들이 좋아서 이번 독서클롭만큼은 가기싫은 마음이 안 드는 건 아니고 덜 드는 편인데
이번주 도서가 알고보니 페미니즘에 대한 책이라서 이번만큼은 정말 가기 싫었다.
근데 이번 독서클럽민큼은 정모고 번개고 매번 진짜 가기 싫었는데도 막상 가보면 좋았던 기억이 많아서 가긴 가야할 것 같은데 모임 참석을 위해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독후감에다가 "나는 페미니즘이 싫어요"라고 큼지막하게 써놓았고 독후감에 박힌 좋아요 숫자도 남들보다 마이 적고 하니 자존감이 부족한 나로써 스트레스를 받아. 안 받아.
3.
어제는 눈이 왔기 때문에
엄마 언니 조카가 성당에 가기 힘들 것 같아서
아침부터 차로 5분거리 언니네 집에 가서 가족들을 성당에 실어다주고 실어다 왔다.
성당에서 오는 길에 동네 맛집에서 포장해온 순대국밥 2인분을 4인 가족이 흡족하게 나눠먹고나서 스스로의 선행에 대한 도취와 가성비 좋은 브런치 섭취로 보기 드물게 긍정에너지가 넘쳐흐른 나는 마침 헬스장이 근처라 좀처럼 하지 않는 주말 운동을 무려 한시간이나 하고 근처 다이소에서 수세미니 바구니니 하는 밀린 살림용품도 구매하였다.
아침 8시30분에 길을 나섰는데 이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에 오니 한시가 넘어있었고 나는 너무나 지쳐 있었다.
4.
그래서 간만에 집에서 소맥으로 낮술을 마셨다.
1과 2와 3이 결합한 필연적 결과였으므로 나는 매우 당당하다. 그래도 30분 정도 낮슐을 먹어도 될지 고민하고 30분정도는 안주를 고민한 점은 내가 마지막까지 얼마나 신중했는지를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긴 장고 끝의 최종 간택 안주는 비엔나 쏘세지를 곁들인 짜게치. 이것만으로도 소주 3분의2병과 카스 큰 병맥 하나로 제조한 소맥을 해치우기에는 막 충분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어제 저녁으로 요리해서 먹다 남은 닭다리살 한우 불고기 매운 전골 남은거에 우동사리도 말아 넣어 먹고 하는 탄수회물 대폭발 식사를 했더랬다. (물론 어제 저녁에도 소주 한졍 마심. 우훗휵)

5.
그래서 일요일 백주대낮의 나는 지금 알콜의 영향으로 매우 행복하기 짝이 없고
지금 당장은 독서클럽에서 여자면서 페미 싫어한다고 맹비난을 받더라도 별반 타격이 없을 것만 같다.
낮술은 증말 좋은거야. 게다가 소맥이면 금상첨화지. 아하하하하하하하ㅎ하하하ㅏ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