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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1주차

물미역 2024. 8. 5. 09:47

1. 

지난 목요일부터 백수가 되긴 했지만, 

연말까지 돌아가는 프로젝트 5개에 외부 전문가로 참여 중이다보니

(5개 맞나? 헷갈리네..1.약관 2. 가이드 3. 자문단 4. 이슈 분석 5. 교육..아..5개 맞네..)

지난 주 목, 금 모두 알바 때문에 회의가 있었고, 

마감을 쳐야 하는 원고도 하나 있어서 나름 바쁘게 보냈다. 

그래도, 당연히 회사 다닐떄보다는 훨씬 여유가 있고, 

무엇보다 지난 회사 입사 이래 나를 계속 짓눌렀던 불안과 압박이 사라지니. 

느무느무 맘이 가볍고 행복해서 

집에서 소파에 누워 있다가도 괜히 아이 좋아라고 육성으로 소리내어 외치곤 했다. 힝힝. 

일단 연말까지 월 소득이 실업급여보다는 많을 것 같이 실업급여는 거의 못 받겠지만, 

이정도만 꾸준히 소소한 소득이 유지될 수 있다면 괜춘할 것 같은디..

2.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많아져서 이 참에 어딜 좀 가보려고 해도

차가 없는데다 지난주부텀 폭염이 엄청 심해지다보니 도통 어딜 갈 수가 없다.

드라이브는 커녕 운동하러 헬스장 가는 것도 여의치가 않음. 

백수 되면 운동 좀 여유롭게 하나 싶었는데

자전거로 5분정도면 가는 헬스장도 후덥지근한 공기와 뙤약볕을 뚫고 자전거 이동하기까지는

큰 맘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백수된 5일간 딱 두 번 감)

마트는 물론이요 일하러 카페 이동 조차 쉽지가 않고, 

이사 준비하러 여유롭게 가전이랑 가구 좀 보러 다니려고 했는데 이것도 여의치가 않다.

특히 가구 단지는 대중교통조차 엄청 불편한 외곽이라..

그리하여 그 어느 여름보다 계절감을 찐하게 느끼며 보내고 있는데

그간 대부분의 여름을 집-차-사무실 이동하면서 참 편하고 쾌적하게 살았다 싶다. 

3. 

지난주에 당근 영어 모임장(30대 초반, 훈남)님이 자기가 일떔에 바빠서 모임을 운영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나에게 운영장을 맡아달라구 부탁함. 

지난주만 하더라도 퇴사 절차 처리하고 인수 인계 떔에 정신이 없었지만,

호감있는 사람에게 도통 거절이라곤 못하기 때문에, 

일단 하겠다고 하고 주말에 따로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봤음. 

그랬더니 자기가 사이드잡하는게 있는게 그 사이드잡 땜에 바빠져서 영어 모임을 꾸준히 하기가 어렵다는 거야. 

그래서 사이드잡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외국계 회사 한국 마케팅 컨텐츠 번역 해주고

컨설팅해주는 일을 시작했다고 하더라. 

원래 본업도 마케팅 부서거덩. 

이야, 애는 진짜 요즘 애들답지 않게 열씨미 사는구나, 대단하다 싶었다. 

이릏게 영어도 잘하고 잘 생기고 목소리도 좋고 괜춘한 애도 이렇게 열씨미 사는데, 

반성해야겠다고 생각하려다가 난 이제 넘 늙어서....(쿨럭)

이 냥반의 꿈은 언능 돈 모아 자가마련인데 코인이니 주식이니 하는 한탕 보다는

근로소득과 근검절약으로 착실히 꿈을 향해가는 모습이 참 기특하다. 

4. 

회사 이름은 챗GPT와 논의 끝에 노아 컨설팅으로 정하기로 했다. 

지난주 만난 전전 회사 동료 A씨에게 회사 이름 땜에 고민이라고 그랬더니

뭘 그런거로 고민하냐고 좋안하는 단어 있으면 그걸루 하라고 했다. 

마침 그 사람이 마시고 있던 음료수의 브랜드가 노아여서

그걸 보더니 노아 컨설팅 어떠냐고 제안해주었음. ㅋㅋㅋㅋ

데이터 홍수 시대에 당신을 지켜주는 노아 컨설팅..

내가 생각한 다른 후보군들보다 간결하고 뜻도 분명해서 괜춘한 것 같은거야. 

챗GPT도 괜찮은 것 같다고 해서 일단 요걸루 하려고 다시 의견 수렴 중에 있음. ㅎ

당시 A씨가 먹던 노아 쥬스. ㅋㅋㅋ

5. 

돌이켜보면 백수가 되면서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크게 세 가지였는데, 

1) 경제적 안정성 붕괴 2) 사람들과의 관계(부모님 실망/동종업계 종사자들 시선)  3)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이였다. 

첫번째 문제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자산 규모를 95% 정도로 투명하게 까발리고 상담을 한 결과, 

이 정도면 최악의 경우 앞으로 소득이 전무해도 국민연금 나올때까지 얼추 버틸만하다여서 조금 안심을 했고

두번째도 겪어보니 생각보다 별 거 아니야. 

가장 걱정했떤 부모님도 생각보다 덤덤하게 잘 받아들이시는 편이고, 

동종업계 종사들은 다들 놀라는 반응이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나에게 별반 관심이 없어 보였다. 

문제는 역시나 세번째인데, 역시나 생활이 엄청 나태해지고 있는거야. 혼술 빈도도 증가하고. 

그나마 외부 회의나 원고 마감일이 있어 최소한으로 지탱하고 있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게을러질지 걱정이 태산..-_-;;

일단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게 중요한 것 같아서, 

무더위를 뚫고 웬만하면 눈뜨자마자 아침 일찍 운동을 가기로 계획을 세우고 

8시부터 시작하는 영어 수업도 끊어 두었다. 

그리고 집에만 있으면 늘어지므로 스터디까페든 도서관이든 밖으로 나가기로 함. 

백수는 아니지만 잠시 휴직 비스무리하게 쉬고 있는 전전 회사 전노조위원장과 같이 논문도 쓰기로 함. 

6.

결론, 백수가 되어 (아직까지는) 더없이 행복하기 짝이 없다. 

간혹 이러다 알바마저 끊겨서 사회적으로 완전히 도태되고 경제적으로 빈곤해질까봐

덜컥덜컥 걱정과 불안이 엄슴해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건강상 크게 이슈가 없다면 먹고 사는 건 큰 문제가 안된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쓰고

그럴수록 건강 관리에 매진해야 겠다 싶다. 

글고보니 의료보험 어케 전환하는지 알아바야겠네. 

매일 먹는 혈압약이 있는데 그게 3개월치가 22,000원인데 의료보험전 가격은 77,000원이더라!

새삼 그리워지는 4대 보험. ㅜ.ㅜ

여튼 이 모든 걸 감안하고도 행복도는 퇴사전에 비하면 쭉쭉 올라갔음을 부인할 수가 없음. 

넘 조음.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