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경과
수술 후 회복 과정은 순조로운 편인 것 같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멘탈리 피지컬리 가장 안정된 상태인 것 같기도 하다.
남녀노소 내지 미혼/기혼을 막론하고
개복 수술 환자의 최우선 순위는 봉합 부위의 안정적인 회복이라는 것이
나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통념인 것이 거의 확실해보이므로
일상이 굉장히 단순해지고 사념이 끼어들 틈이 별로 없다.
수술 부위 회복에 필요한 적정한 영양분을 공급해주고 병원에서 지시한 약을 때맞춰 먹어준다.
약을 먹기 위해 그래고 수술부위 재생을 위한 안정적인 영양분 공급을 위해
섭생이 중요할텐데 식사는 엄마가 한솥가득 끓여놓고 간 미역국과,
주위에서 보내준 배민 상품권과 즉석 식품들을 활용해서 적절히 때우고 있다.
얼마전에 구매한 식기 세척기 덕에 설겆이에 큰 수고로움을 들이지 않아도 되서 먹는데 큰 지장은 없다.
회사일이 궁금해서 메일을 열어보고 싶은 욕구가 한번씩 올라오는데
한번 열어보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게 확실하고
열어보는 순간 직면하게 될 불안과 갑갑함이 몰고 올 스트레스가
수술부위 회복에 좋지 않을 것이 명약관화하다는
누가봐도 타당하고 사회적으로도 용인받을 만한 대외명분에 힘입어
병가 2주차가 시작되는 오늘까지 무사히 참아내고 있다.
3주차때는 좀 열어볼지도 모르겠다.
우울과 불안은 나의 천형과 같은 거라 결코 인생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데
하루종일 의식적으로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돌려막으며 머리를 비우다 보다 보면 시간이 정말 후딱 잘 간다.
원래도 시간날때마다 멍때리며 넷플릭스와 유튜브나 처 봤지만
시간을 허비하는 느낌이 들어 항상 불안하고 스트레스 받았거덩.
근데 상처 치료를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스트레스를 최소화 하며 시간이 흘러야 하므로
그 시간이 전혀 아깝거나 허비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괴롭지가 않다.
그래서 평소라면 절대 보지 않았을 <일타스캔들> 정주행했는데 정말 잼나더라.
전도연도 잘하지만 정경호가 캐릭터를 살리며 연기를 정말 잘해서 보는 맛이 있더만.
사람들이 재밌다고 하는 데에는 역시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술을 안 먹는 것도 전혀 괴롭거나 힘들지 않다.
일단 알콜이 수술 부위 회복에 좋지 않을 것이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에 금주의 당위성이 굳건하고
무엇보다 일상에서 스트레스가 없어서 그런지 술이 많이 당기지도 않는다.
주치의 쌤은 음주는 한달 후 가능하다고 했고 희정이는 사실 상관없다고 하긴 했는데,
인생에서 한달 정도는 술없이 살아야되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주치의 쌤 말을 따를 예정이다.
수술 부위에 물이 닿으면 한되서 샤워를 할 수 없긴 해서 찜찜하지만 세수나 머리감기 등은 전혀 문제가 없다.
회복의 가장 큰 난항은 의외로 기침이었다.
전신마취를 하면서 기도에 삽입했던 관이 기관지를 심하게 건드렸는지
입원내내 목이 아프다 기침이 시작되었는데
기침을 하기 시작하면 수술 부위가 너무 아프기도 하고 상처가 벌어지는 느낌이 나서 넘 걱정이 된다.
그래서 기관지에 좋다는 배도라지차를 주문해서 하루 종일 마시고 있는데
(동네 마트에 안 팔아서 쿠팡 유로 멤버쉽 가입해서 인터넷 주문함,
쿠팡이 가격이 비싸서 거의 안 쓰는데 전날 저녁에 주문한게 담날 새벽에 도착한 걸 보니 확실히 편리하긴 하더라.)
플라시보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기침이 확실히 잦아든 것 같다. 대신 재채기가 출현하긴 했지만 빈도는 훨씬 낮으니 이제 좀 살만하다.
가장 답답한 것은 매일 한 시간 정도 하던 운동을 못하는 건데,
산책하는게 좋다고 해서 배민 포장이나 장보러 가는 목적 정도로 20~30분정도 걷고 있는데
왜인지 그정도만 걸어도 금방 피곤해지더라.
어서 수술 부위가 잘 붙어서 헬스장 가서 운동하고 싶당.
원래 3월달에 약 25km정도 되는 송파 둘레길 완주하려고 했는뎅,
천상 5월초 정도로 미뤄야 겠다.
여튼 이렇게 뇌속을 '수술 부위 회복'이라는 최우선 목표로 채우고
돌아가는 일상이 이리 안정적인 걸 보면,
나는 역시나 뭔가 외부에서 주어지는 일상의 큰 축이 필요한 것 같다.
일말의 가능성마저 완전히 사라진 남들같은 번듯한 가정은 선택지에서 지우고
내 일상을 지지해줄 확실한 축을 찾아야 할텐데 뭐가 될지 전혀 모르겠다.
로스쿨 가고 싶은데 나이도 나이지만 학점 때문에 물리적으로 갈 수가 엄서........
여튼 뭐 그건 회복하고 나서 걱정할 문제다.
내일은 드디어 실밥 뽑으러 가는 날이다.
제발 잘 좀 붙었으면 좋겠다.
수술하고도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니 시간 정말 잘 가는구나.
뇌를 비우고 사니 점점 요일 개념도 엄어지고 있다.
여튼 수술 후 환자의 삶이 아직까지는 꽤 만족스러운 편인데
무엇보다 멘탈적인 안정이 가장 크다.
이제 컨디션이 원래대로 다시 회복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지긋지긋한 우울과 불안이 다시 시작되겠지.
아....싫어라. 언제까지 그러구 살아야 되. 진짜.
정답은 회사에서 나가라고 할 때 까지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