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쓰기 클럽 근황
지금 생각해도 논문쓰기로 쌓인 글쓰기 스트레스를 수필 클럽 글쓰기로 푼다는 생각은,
이열치열이라는 오래된 전략도 있고 해서 꽤나 괜찮은 착상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매사 그러하듯 좋은 착상이 반드시 좋은 결과물로 이어지지는 않는 법이다.
수필클럽 두번째 모임을 했다.
첫인상이란게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는데 확실한 것은
대체로 더 많은 정보는 다른 측면에서의 사실을 노출하고 이는 다른 진실을 드러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1.
수필 쓰기 클럽은 매월 한권의 수필책을 읽고 읽은 느낌을 교류하고
책과는 무관한 자신의 수필을 써서 다른 사람에게 평가를 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나는 사실 수필이라는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밀도가 낮고 진정성이 없으며 허영 그득한 흩날리는 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수필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예외지만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겉멋 듣 셀럽이나 유명인들의 수필은 진짜 오노. 넘나 시러.
이번달에 읽어야 할 수필책이 10년차 카피라이터가 썼다고 해서 딱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
읽으려면 스트레스 받겠다 싶어 걱정했는데 웬걸. 생각보다 재밌었어.
일단 첫 글이 자기는 책을 조아하지만 어떤 책을 읽어도 저자나 제목 등이 잘 기억안나서
잘난척 하기 곤란하다는 글이라 엄청 큰 안심과 공감이 되었다 말이지.
그런데, 막상 독서 클럽에 나가 서평을 하는데,
어떤 회원이 이책이 너무 싫다고 진정성이 없는 흩날리는 동남아 쌀 같은데다
자기 기억력 형편없다고 징징대는 저자가 정작 서울대 나온 걸로 안다고,
부족한 척 겸손한 척 하지만 사실은 누군가 너는 그렇지 않아..라고 말해주길 바라는 거라고,
완전 위악적이라고 극혐이라고 그래서...
듣는 나는 왜 이렇게 좌불 안석이 되었는지!!!
웬일인지 그 뒤로 완전 멘탈을 잃고 족히 10년은 어린 애들 앞에서 거의 사회성 불능자 내지는 금치산자 수준으로 처신하고 왔어.
이 발언을 한 회원은 수필에서 '세상 어느 누구도 월급쟁이가 꿈인 사람이 없듯이'라고 쓴 그야말로 왕성한 에너지의 소유자로
어려서부터 월급쟁이가 꿈이었던 나를 주눅들게 했는데,
그냥 나와 완전 대척점에 있는 유형의 사람인 것인데,
이렇게 독서 클럽은 다양한 사람을,
게다가 유료 독서 클럽이라 어느 정도 안전성이 보장된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2.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글의 소재가 스타일이나 밀도 등등이 정말 천차만별이라 ,
지향해야 할 가이드가 없어서 생각보다 항상 힘들게 써서 올리는데,
사람들의 평가도 참 천차만별이나 기준이 없어서
평가 수준에 대해서는 기대보다 좀 실망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친목 모임이라는 것이 좋은 말 밖에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는데,
내가 보기에도 정말 글을 잘 쓰는 보석같은 사람이 있다.
정말 잘 써. 소재도 좋고 문장력도 좋은 데다 구조도 좋아.
개인적으로 말을 섞어 본적도 전혀 없고 어디서 몰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여튼 딱 보면 일머리도 있어 보이고 똑똑하고 내공이 있어 보여.
(참고로 나보다 열살 정도 어린 여자다)
근데 그 사람은 클럽에서 별로 말도 안하고 남의 글에 대해서도 거의 평가를 하지 않아.
그런 그녀가 이번 모임의 합평에서 유일하게 입을 열었을 때가 내 글을 지지할 때였다는 거. 우훗훗.
회원들에게 내 글은 스타일이 분명하지만 너무 문장이 길고 비문이 많다고 까이는데
좀처럼 남의 글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 그녀가,
문장이 길면 지루해지기 쉽상인데 나의 글은 길지만 리듬감 있고 재미있고 잘 읽혀서
긴문장으로 이정도 잼나게 쓰면 그것도 재능이라고
굳이 스타일을 버릴 필요가 없다고 오히려 이 장점을 잘 살려서 개성화 해야 한다고 애기해주었어!!!!!!!!
좋게 말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저도 당신 글 너무 좋았어요!! 당신을 좀 더 알고 싶어요!! 라고 애기하고 싶었지만,
수필 클럽에서 나는 사회성 금치산자라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
여튼 모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지.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근데 웬지 그녀가 다음 모임부터는 안 나올 것 가타 좀 걱정.
글고 나랑 넘나 나이 차이가 나서 어차피 이번 생애는 안될거라 큰 기대는 없다.
#3
첫모임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기대가 생겼기 때문이겠지만
정보가 더 드러난 두번째 모임은 생각보다 별루였고,
앞으로도 더 별로일 것 같아 정말 더 나가고 싶진 않지만,
하기 싫은 걸 해야 사람이 좀 발전이 있지 모..........
바바바바. 가기 싫어도 회사 꾸준히 다니니까
어쩄든 어려서부터 꿈이던 월급쟁이도 꾸준히 할 수 있는 거잖아.
이런저런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정제된 수필을 쓰다 보면 스스로에 대한 통찰이 된다는 커다란 장점이 있어서
연말까진 열심히 나갈 참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방향성이 네거티브하고 무기력한 설정이 잡혀 있으므로,
내가 하기 싫은 것들로 인생의 80% 정도는 채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나는 위악적인가?
그러기엔 너무 사회적 금치산자 수준으로..
위선적인가?
엄살인가?
자기연민에 쩐 건만은 확실한데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걸 5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하고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지만...
명상이라는 게 모 그런거라 하더만.
자기 스스로에 집중해서 생각하는 거라 하더만. 모.
그니까 명상의 일종인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