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당근
이번 판매 품목은 올해 초 인터넷으로 구매한 그릇이었다.
앞접시로 쓸만한 국그릇인줄 알고 샀건만
막상 배송을 받고 보니 어마무시하게 크고 무거운 면기가 온 것이이다.
반품하려니 배송비 들고 혼자 사는 살림에 쓸데도 엄고해서
구입가의 70프로 정도 가격으로 당근에 내 놓은지 어느덧 6개월이 지났건만 그 흔한 구매 문의 하니 없던 참이었다.
수없는 끌올을 하며 어느덧 가격도 오십프로 정도로 낮춰졌더랬다.
여튼 무려 6개월이 지나선 그저께 극적으로 구매 문의가 와서 약속을 잡았더랬다.
원래 5시로 약속 잡았는데 길이 막힌다고 15분 늦는다길래 찬찬히 오라고 했고
마침내 만난 그녀는 느무느무 내 스타일이야.
일단 싸이클을 타고 온 것도 넘 좋았고
(그냥 자전거 말고 싸이클말이지)
커다란 키에 조그마한 얼굴 길다란 팔다리에다가,
수수하게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고 야구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결정적으로 밝고 건강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던 것임.
만약 다음생에 피지컬을 고를 수 있다면
나는 전지현도 송혜교도 아니고 심지어 이나영이나 안젤리나 졸리도 아닌
단연코 그녀라고 애기할 수 있을 정도였음.
엄밀히 말해 누군가는 미인이 아니라거나 평범하다고도 애기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너무너무 이상형이야.
길다란 팔다리로 싸이클을 타고 다니는 건강한 체육 소녀야말로 내가 되고싶은 이상형.
그래서인지 원래 8천원에 내놨건만,
현금을 7천원 밖에 안 가져왔다고 천원은 계좌로 부쳐주겠다며 주섬주섬 지폐를 꺼내는 그녀에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쿨하게 7천원에 가져가시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푼돈에 연연하고 네고 사절이라는 엄격한 당근 마켓 판매 방침을 가진 나로써는 결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지라
부지불식간에 나도 모르게 깎아주는 내가 좀 의아하긴했는데
깎아줘서 고맙다는 그녀의 메시지를 보고 나니 내가 그녀에게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꺠달았따.
내가 열살만 어리고 남자였으면 틀림없이 번호 좀 알라달라며 진상짓을 했을꺼야.
이래서 다들 당근당근하는구나.
P.S 그녀의 채팅에 답장하고 싶었지만 혹시나 진상으로 빠질까바 불굴의 의지로 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