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샵
1.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원래 회사 워크샵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었따.
회사돈으로 술마셔 여행가, 놀아주는 사람들 있어,
얼마나 좋아.
물론 갑들 접대해야 되고 윗사람과 놀아주는게 곤욕이기도 했지만
지난번 회사에서는 마음맞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고,
상사들도 같이 놀기 괜찮은 편이었고 술먹고 징징대며 스트레스도 풀 수 있었고,
워크샵 끝나고 헤어지는게 정말 아쉬울 지경이었다. 더놀고 싶은데..
게다가 술이며 라면이며 워크샵 끝나고 남은 식자재들도 챙겨가며 알뜰하게 워크샵을 활용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직을 하고 새 회사의 워크샵은 뭔가 달랐다.
일단 마음 맞는 사람 찾기도 힘들고,
술을 안 마셔, 술을...왜 워크샵 가서 술을 안 마시지?
원래 워크샵은 공기 좋은 곳에서 회사 돈으로 술 마시러 가는거 아닌가?
여튼 기대했던 팀장급 워크샵이 그야말로 1박2일동안 정신 교육 받는 곳일 뿐이라는 것을 몇 번에 거쳐 꺠닫고,
정말 너무나 가기 싫어졌다.
난 아직도 여기서 맘놓고 친하게 지낼만한 사람이,
특히 팀장급 중에선 없어서 비리비리하게 지내다 오겠구 싶은 것이 딱 싫어졌다.
근데 오늘은 실장한테 머라머라 보고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VP가 잘 지내냐고 하길래 겁나 못지내거덩요 라덩가,
담배값 올랐는데 너 어뜨카냐..라길래 죽을떄까지 필거거덩요...라고 노닥거리다가
워크샵 끝나고 집에 가봤자 할일 없는 사람들끼리 하루밤 더 자다 올거라고 하길래,
낮술 먹여 주나요..했떠니 머든 맘대로 해도 된다고 하길래,
누가 가는 줄도 모르고 머하는 줄도 모르고 어디서 자는 줄도 모르고 덥썩 물었지.
막연히 옛날 회사에서 형들이 놀아주고 내가 징징대는 거 받아줬던 거처럼,
VP가 그래주지 않을까.....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 말도 안된다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나는 사회성이 다시 바닥을 기기 시작한게 아닌가 싶다.
울 VP는 사람들을 겁나 쪼는 편이라
택도 없는 희망사항임을 아닌데 요새 너무 심심해.
아무도 안 놀아줘!!!!
여튼 울 실장이 와서 정말 갈꺼냐, 갈꺼면 너 땜에 방하나 더 잡는다고 애기할 떄가 기회였는데,
그때도 누가 가요? 머해요? 저 정말 가도 되요? 라는 기본적인 확인도 안하고,
넵!!! 이라고 대답했던 나는 정말 먼 생각이었는지.
그니까 지난 회사에서 다년간 워크샵에 길들여졌던 나는
대낮에 교외 어딘가에 위치한 OO가든에서 파는 닭백숙이라덩가 닭도리탕과 함께 소주 마시는 걸 겁나 좋아하는데
이 짓 한지가 정말 몇년은 되너 같다. 이거야 말로 혼자 할 수가 없는 거라...
내가 그리는 가장 Best 그림은
RC 조정이 취미인 VP랑 울 실장이 어딘가 계곡에서 무선 비행기나 헬리콥터 날리고 있을 때
옆에서 나는 대낮에 닭도리탕에 소주 한병쯤 비워서 얼큰히 취한 상태로
담배를 피워쿨고 계곡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나 헬리콥터를 멍하게 바라고보고 있는 그림이다.
물론 최악은 여러가지의 수가 있겠지.
이제 안가겠다고 할 수도 없고 불안한 마음에 글케 같이 갈건데 내가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라고 팀원에게 투덜댔더니,
에이..팀장님 집에서 혼자 주말에 머해여. 왕좌의 게임이나 보겠죠..그것보다는 놀다 오는게 낫죠...라고해서 겨우 위안을 받았는데..
울 VP 겁나 무서운데.
애는 참....
2.
어쩌다 보니 울 팀원들 대부분은 나를 맹렬히 미워하고 있지만,
그래도 개중에서 티를 덜 내는 애가 한명 이따.
팀장님 나가면 저도 나갈거에라고 했떤 애...
그래서 나 나가기로 하고 좋은 조건의 이직 기회를 잡았는데,
내가 거의 동정심에 호소하며 반 강제적으로 눌러 앉혔던 애...
애가 앞에 나온 갠데,
애는 일을 정말 잘한다.
법률에 대한 이해, 다른 팀과의 조율, 게다가 예의와 겸손함까지 두루두루 갖춘,
업무에 대한 전문성과 사람에 대한 예의까지 모두 갖춘 이 팀원은 정말 훌륭한 자원이다.
일 하는 스타일도 울 팀에서 나랑 가장 비슷한데 나보다 훨씬 대범하고 대외 관계가 좋다.
난 솔직히 팀장 대행으로는 애를 삼고 싶은데,
참으로 어이가 없는 것은 애가 그간 워낙 저평가도 받고 경력도 꼬여서 울 팀에서 가장 직급도 연봉도 낮다는 것이다.
감정적인 것을 순수히 배제하고 아무리 객관적으로 봐도 그렇다.
울 팀원들은 대부분 일은 잘하지만 미묘하게 태도의 차이가 있다.
일 하기 싫은데 내가 시키니까 마지못하게 하거나,
쪼큼 하고 무쟈게 생색을 내서 내가 비위를 맞춰야 하는 단점들이 있는데 애는 그렇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애가 이직하겠다고 하고 그걸 내가 잡고,
근데 애는 여기서 이 대우 받으면서 일할 애는 아니고,
실장한테 애는 정말 훌륭한 애다...라고 직접적으로 애기한 적도 있는데,
울 실장은 나는 잘 모르겠다....라고 해서 좌절했던 기억도 난다.
근데 애가 중요한 프로젝트들을 원래 능력대로 잘 발휘해서 잘 해내고
실장에게 애의 실적을 가감없이 애기한게 전달이 됐는데,
시큰둥 했던 실장이 애를 일단 우수 직원에 선정해줘서 정말 기뻤다.
빨리 승진시켜야 되는데.
팀장이라고 해서 팀원들 승진이나 평가를 맘대로 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아쉬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