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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미학

물미역 2019. 8. 9. 11:34

수년도 전이지만 여기 이직하고 매우 낯설었던 많은 것들 중 하나가 메일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메일 커뮤니케이션은 그냥 공지 용이거나 파일 전송 용이지 

아무도 메일 내용 자체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공식적이고 오피셜한 커뮤니케이션 기록이기 떄문에 상당히 중요하고, 

특히 임원들이 은근히 짧고 간략하게 핵심을 찌르는 메일을 써야 쿨하다고 생각하는 정서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내 메일이란 나의 질척거리는 인성을 고스란히 반영해서 상당히 주절주절대는 타입이란 말이지. 

그러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대도 도통 고칠 수가 없음.

이것도 다시 태어나야 하는 영역.

일단 마음이 약하고 상대방 눈치를 엄청 보는데 메일 만으로는 상대방의 기분이나 분위기를 알 수 없으니

이것저것 고려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다 하다 보면 엄청나게 주절대는 장문의 메일이 완성되곤 하는 것이다. 

지금도 바바....... 하려는 애기는 엄청 간단한고 심지어 제목도 한 단어의 미학인데 서두가 길잖아. ㅋㅋ

여튼 여기와서 꾸역꾸역 회의를 하다보니 추가 회의를 계속 해야 하는데 

팀장급이 휴가 가고 나는 담주면 가야하고 해서 등등의 이유로

VP급, 그것도 Senior VP급, 말하자면 본사 회장님 담으로 높은 사람과, 

부득이 단독 회의를 하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니 난 정말 이러고 싶지 않았다 말인데 어쩔 수거 엄서. 

그래도 그 VP가 나 출장 보내라고 한국 지사장에게 애기도 한 사람이고 해설,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야 나았지만

조직의 권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나같은 보수적인 사람에게는 엄청난 부담인 것이다. 

그래서 겁나 주절주절 열 줄이 넘어가는 메일을 썼지 .

아이고......초청 주셔서 얼마나 귀중한 시간 보내는지 모르겠네여.(굽신굽신) 

근데 여차저차 해서 매우 송구하지만 회의를 함 해야 할 것 같은데요오..

아니 제가 이럴려고 그러는게 아니라

먼저 회의했던 A실장님이 꼭 D팀장님이나 S부사장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하드라구요. 

그래서 원래 D팀장님에게 애기할라 그랬는데 하필이면 휴가이지 몹니까. 저는 담주면 가야 하고. 유유.

모쪼록 바쁘시겠지만 시간 좀 내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아아아...... 등등등

근데 그 냥반 답장이 왔어. 딱 한줄! 

"Yes, I should have time tomorrow."

음. Should라는 간결한 한 단어에 들어가 있는 맘씀씀에 마음이 찡해지는 나는 갱년긴가바.

 

P.S 1

혹시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 찡해진 걸까바 굳이 물어보자면. 

I have time tomorrow라고 써도 되는거잖아. 

근데 Should를 굳이 넣었잖아. 

그것도 Could도 아니고 might도 아니고 곧이 Should라고 넣었잖아.

Should는 ~해야만 한다는 거잖아. 

그니가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나를 위해서 어떻게든 시간을 내주겠다 모...이런거 아니냐는 거지....

몰라.....아무려면 어때....

나는 아무래도 이 노인네 조아하는 것 같아. 

 

P.S 2

근데 그 냥반이 회장 보고 한 자료를 다른 사람에게 공유받았는데, 

익숙한 장표가 하나 들어가 있는거야. 

아무리 꼼꼼히 살펴바도 내가 그 사람 서울 왔을 때 발표했떤 자료더라. ㅋㅋㅋㅋㅋ

그때 그 냥반이 이 장표 디게 맘에 든다고 했는데 그걸 그대로 써먹을 줄이야. 

게다가 그거 내가 한글 자료 영어로 번역하는 중에 잘못 작성된 부분까지 고대로 들어가 있는 걸 보면 내 자료가 확실해!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