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재택 근무를 계속 하니까
평일에도 느지막히 일어날 수 있어서 좋다.
느지막히 일어나서 씻지도 않고 키보드를 도닥거리다가
동네 밥집에서 혼자 밥먹고 동네 까페에서 아아를 쪽쪽 빨고 돌아오노라면
프리랜서 내지는 백수의 삶이란 이런건가 싶어서
행복해지려는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물론 뭔가 잘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뭔가 더 열씨미 타이트하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알수없는 불안감이 연이어 엄습을 하지만
재택이 길어지면 그 불안감의 밀도나 빈도가 옅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 뭐 위드 코로나 오면 재택도 조만간 끝날거구
할 수 있을 때 여유를 조금 즐기는게 뭐 어때서.
오늘 오전에는 회의 하나 빼고는 영어 발표 준비하는데
이런게 일종의 어학 연수 아닌가 싶어서 사실 음청 좋았다.
물론 더 중요한 일 두고 이거 하고 있어야 한다는게 근본적인 짜증이 있지만
아니 조직의 우선순위가 그렇다는데에 순응할 밖에 뭘 어쩌겠어.
생각해보면 내가 이직을 한창 하려고 할떄,
면접을 위해서 몇가지 만들었던 포장지가 있거덩.
이를테면 울 나라에서 경력이 가장 오래됐다던지,
산학연을 두루거친 유일한 경력자라던지
광범위한 이 분야의 모든 업무에 직간접적인 경험이 있는
국내에 찾아보기 힘든 정말 유니크한 경력자이며,
이를 토대로 업계를 대표하는 오피니언 리더로의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었는데,
모두 사실에 기반한 것이고 일말의 거짓이나 과대 포장은 없지만,
이걸 반복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애기하다보니
내 스스로가 정말 내 경력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나바.
경력이랑 전문성이랑은 또 다른 건데 전문성도 특별하다고 생각한 듯.
그래서 박사까지 따면 뭔가 한층 더 레벨업 되려나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막상 별다른 변화가 없고 박사 준비 하던 때에 비해 시간은 많이지고 하니 막연한 불안과 압박이 더 심해졌던 것 같다.
한동안 뭔가 내가 특별하다는 착각에 빠져서 내 성향과 맞지 않는 가치를 추구했던 듯.
뭔가 허황된 꿈에 들떠 있었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더욱더 내 본연의 루저적 자세로 돌아가
뭔갈 성취하겠다는 자발성을 버리고
혹시라도 외주 들어오는 거 있으면 투덜거리면서 하고
언제 짤릴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하릴없는 시간 낭비에 자족해하는 소심한 게으름뱅이로 살아야 겄다.
이게 내 본성이 차선으로 원하는 삶이다.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