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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뿌리깊은 악습 중 하나가,
괜히 혼자서 상대방에게 잘해주다가 상대방이 나만큼 잘 안해주는 것에 분노하거나 실망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호의를 받았으면 당연히 돌려주는게 인지상정이라는 생각을 했고,
나또한 비록 반갑지 않은 호의지만 받으면 뭔가 보답을 하려고 했고 마음을 빚을 지며 살았다.
이를테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상사가 나를 승진시켰을 때,
승진시켜준 상사니까 뭔가 로열티를 가져야 할 것 같은 반갑잖은 상황에 투덜투덜대면서도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나의 호의라도 상대방은 무관심 내지 부담일 수도 있다는 걸 몇번 경험하면서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데 역시 천성이라 잘 안 고쳐진다.
사실 공황장애 겪으면서 양상이 조금 변해서 상대방의 호의나 반응을 일단 의심하고 보는 의심병 환자로 변태되기도 했다.
여튼 오늘도 이런 천성으로 뒤통수 맞은 사례가 있었다.
컨설팅 회사에서 인력을 하나 파견받아 썼는데,
팀도 없이 혼자 나와 까탈스러운 나와 일하는 게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여러모로 잘 해주려고 노력했고(쓸데없는 호의)
이 분야의 선배로 경력이나 업무적으로 성장 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알려주고 싶었다. (오지랍 그 자체)
그 친구 경력에 맞는 좋은 포지션이 나왔길래 알려주면서 이직도 생각해보라고 했고
그 포지션의 팀장/실장 다 아는 사람이라서 애기도 해뒀고, (정말 쓸데없는 짓)
여차저차 면접팁도 알려주고 합격/불합격 진행상황도 알게되는대로 알려줬다. (에휴.....고맙지도 않아하는 것을)
그런데 정말 이상한게 몇번을 당부해도 그 친구는 자기가 그 회사로부터 알게 된 진행 상황을 내게 애기해주지 않았다.
정말 이상함.
마침내 이 친구는 그 포지션에 합격을 했고 퇴사 날짜를 조율하던 중
원래 소속된 컨설팅 회사에 인력이 부족해서 후임 인력을 채워줄 수가 없다고 했다.
원래 있던 그 친구라도 최대한 있어 줘야 도움이 될 텐데
자기는 이직하면서 좀 놀다 가고 싶다고 후임도 안 정해진 상황에서
다른 회사 입사 3주 전까지만 다니겠다고 통보해왔다.
물론 이직하고 퇴사 시점 정하는 거 다 자유롭게 정하는 거지만,
아니 애초에 이 이직 자체가 내가 아니면 성사가 안됐던 거고 내가 과정에서도 이런저런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인데
지금 후임 인력도 없는 상황에서 자기 이직 시점이 파견 계약 종료 시점인데,
나같으면 그래도 최대한 있다가 나가려고 할 텐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나 싶어 분노하다가
애초에 문제는 나에게 있었어.
아. 그냥 비즈니스적으로 만난 상대 그냥 비즈니스적으로만 대할 것이지
뭔 오지랍을 부려서 이직자리까지 알아봐주고 서포트 해주고.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한 나의 어리석음과 나이브함에는 정말이지 탄식을 금하지 않을수가 없다.
정작 내가 C사 이직을 안한 거도 비슷한 이유였어.
나는 잠깐이라도 같이 일한 사람들에게 뭐랄까 그래도 의리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 했던건데...
나는 정말이지 현실감각이라곤 없이 망상 속에 사는 미친 사람인거 같아.
반성하는 바이고 앞으로는 특히 조심하겠습니다.
호의를 함부로 가져서도 안되고 호의를 준다고 뭘 기대하면 안됨.
아니 뭔가 보상을 기대한게 아니라 최소한의 도의적 배려를 원한거지만..
배려라는 거 자체가 기대지 모. 그렇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