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보니 새벽 여섯시.

어제따리 일찍 잠에 드느라 놓친 드라마 결혼의 여신을 다시보기로 보았다.

드라마가 끝나고는 침대에서 딩굴대며 모두의 마블을 세판쯤 했는데 모조리 졌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계속 이겼는데, 요샌 계속 진다. 이제 모두의 마블도 관둬야겠다 싶었다.

 

언니에게 전화가 와서 언니네 집으로 아침밥을 먹으러갔다.
메뉴는 깁밥이었는데 오래간만에 먹은 간이 세지 않은 담백한 엄마표 가정식 김밥이 아주 맛있었다.

 

아침을 먹고 늘가는 영화관에 가서 조조 영화로 화이를 보았다. 분명 잘 만든 영화였고 흡입력도 상당했지만 이야기가 너무 어두워서 내 취향은 아니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언제나 기원하는 나 같은 공리주의자에게는, 같이 다 죽자는 공멸의 이야기는 확실히 취향이 아니다.

지구를 지켜라에서의 장준환의 그 똘끼가 좋았건만. 하지만 이동진의 평대로 좋은 영화임엔 틀림없다.

 

영화를 보고 회사에 갔다. 회사 법인카드로 근처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어제 무한도전에서 보아가 짜장면을 무척 맛있게 먹었기 때문이다. 회사 가서 옛날 회사에서 오더를 받은 알바를 했다.

알바를 마치고 논문을 쓸까했는데 당직근무로 출근해있던 다른 팀 팀장이 일꺼리 하나를 던져줘서 열심히 그거 하고 나서 아아 논문 써야하는데 하면서 벤츠 a클래스와 골프에 관한 평을 인터넷에서 열심히 검색했다.

오늘의 결론은 차라리 오백만원 더 주고 네비와 후방카메라가 달린 벤츠 최상위모델을 살까하는 것이었다.

내일은 또 어찌 바뀔런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12월까지는 이 지랄이 예정되어 있다.

차는 어떻게 되었냐 하면, 벤츠를 사기로 하고 잔금을 치르기 위해 언니에게 빌려준 돈을 달라고 했는데,

의외로 언니가 매우 완강히 반대하면서 벤츠 살꺼면 돈 안 준다고 했다.

뭐 돈이야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무리수를 써가며 완강하게 반대하는 언니를 보니 내가 뭔가 큰 잘못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12월에는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을 빼고 여기 절반만한 곳으로 이사를 가니까,

여기 전세금이 빠지면 무리 없이 살 수 있게 되므로 일단 12월까지 홀딩하기로 했다.

차때문에 신경쓰느라 지쳐서 빨랑 아무거나 언능 샀으면 좋겠는데.

 

여튼 논문은 한 자도 안 쓰고,

인터넷으로 온갖 커뮤니티를 섭렵하고 보니 어느덧 여섯시.

회사 근처에 있는, 20대 여자애들의 나름 핫플레이스에서 저녁으로 샌드위치를 먹기로 했다. 물론 결제는 법인카드로.쿠쿠.

클럽샌드위치가 7천8백원, 회사 석식비 지원은 만원까지만 되기 때문에 음료는 별도로 사지 않았다.

소문이 자자한 명성만큼이나, 샌드위치의 맛은 아주 훌륭했다.

나는 빵 종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신선한 식재료와 강하지 않은 소스가 주는 건강한 맛이 느껴졌다.

너무 두꺼워서 한 입에 베어 물기 어렵다는 것만 빼면 정말이지 완벽한 샌드위치였다.

하지만 싱그럽고 활기차며 예쁘장한 20대 남녀들의 젊음의 활기로 왁자지껄한 까페 한구석에서,

옛날 회사에서 보급품으로 받은 등산 점퍼와 추리닝을 입고,

혼자서 우걱우걱 샌드위치를 맹물과 함께 씹어먹고 있자니

정말이지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오늘 하루 돌이켜 보면 나름 허투루 시간낭비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 이렇게 혼자만의 생활이라는 것은 아직까지도 외롭기 짝이 없고 적응이 안된다.

 

집에서 멍때리며 TV나 보거나 낮술이나 퍼마실 떄는 전체적으로 생각이 둔해지고 멍한 상태가 지속되니까,

허무할 지언정 외로운 생각은 덜 드는데,

오늘은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뇌가 전체적으로 각성 상태에서 혼자 있다보니,

유달리 외로운 생각이 북받쳐 올라서,

한없이 우울한 마음으로 퇴근길 지하철에 올랐다.

 

집에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야 되는데,

요즘은 환승역에서 갈아타지 않고, 한정거장 더 간 다음에 집으로 걸어간다.

오늘은 주말이라서 지하철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었기 때문에,

평소라면 걸어서 가는 길을 자전거를 타고 돌아왔다. (걸으면 보통 50분정도 걸린다.)

걸어걸떄는 항상 다른 길로 가려고 하는데, 오늘이 길은 어쩌다보니 한강변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한강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말할 필요도 없이 외로움은 두 배가 되었다.

분명 나보다 어려보이는 남자애에게 우리 조카보다 다섯살은 많아 보이는 어린 아이가 '아빠, 같이가~'라고 부르는데

자전거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함께 하는 어린 부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다정해보였다.

 

이게 다 논문, 엄밀히 말하면 연구 계획서를 한자도 못써일지도 모르겠다.

연구 계획서는 커녕 주제만 정해졌어도 나름의 성취감으로 덜 외로웠을텐데.

 

Posted by 물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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