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카테고리 없음 2014. 10. 19. 21:54

김영하의 신작 산문집 <보다>가 출간되었다.

출간된지는 한달이 좀 넘은 것 같은데 예판으로 구매해서 보기 시작하다가,

어찌된 셈인지 마지막 몇장을 남겨두고 한달쯤 뭉갰었는데 오늘 그 마지막 몇 페이지를 끝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나는 정말 김영하가 좋다.

단순히 재미라던가 공감이라덩가 교훈이라던가 하는 걸 넘어서

이 냥반의 쓴 문장과 하나하나의 문장들이 모인 문단과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뭘라까,

나를 둘러싼 우주와 대기가 안정이 되는 기분이랄까.

그러니까 글의 내용도 물론 좋지만,

에펠탑과 같은 아치형의 조형물을 보면서 느끼는 안정감과 유사한,

김영하가 쓴 문장들의 물리적 구성이 자아내는 어떤 안정감과 완결성이 있다.

예전에 TV에서 인체와 식재료를 포함한 모든 물체들은 그들 고유의 진동이 있고,

그 진동들이 서로 맞는지 안맞는지에 따라 궁합이 결정된다라는 반쯤은 약장수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말도 안되지만 그런 사이비 물리학적이 설명이 아니고서는 나 스스로도 잘 납득이 안될 정도의 안정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문장은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으며 메시지는 명확하다.

하루키의 글들과 유사한 면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딘지 공중을 부유하는 듯한 하루키에 비해 김영하의 글들은 단단하게 땅바닥을 밟고 서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차이다.

뭔지 모르게 항상 정신을 멍하게 만드는 하루키 신작을 끝내고 김영하의 나머지 몇 장을 읽어서 그런지,

훨씬 더 그 장점이 크게 느껴지기도 한 것 같다.

(그렇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직도 하루키의 신작이 나오면 기계적으로 사서 읽는다.)

 

여튼 그래서, 김영하의 글들을 읽을 때면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참 다행이다라고 느끼는,

그야말로 살면서 좀처럼 없는 그런 순간이 되곤 한다.

그니까 나는 우선 한국인이라서 다행이라는 것은 커녕, 태어나서 다행이다라고 느끼는 적은 전혀 없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데,

단 한 순간,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고, 한국어가 가진 고유의 매력을 느낄 수 있꼬,

무엇보다 이 사람의 글들을 행간과 맥락까지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 곤 한다는 것이다.

이 사람도 등단한지 이십년가까이 되어서 지겨울만도 한데,

매번 읽을 떄마다 문장 자체가 주는 그 온전함의 느낌은 항상 여전하다.

아직도 대학교 1학년때 서점 그 날에서 김영하의 첫 소설책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살 때가 어제처럼 기억이 난다.

난 원래 예전 일을 잘 기억 못하고 나이가 들수록 더욱 기억력 상실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그 때 그 순간은 정말 아주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심지어 점원이 투명 비닐로 책을 감싸는 것을 끈덕지게 응시하고 있던 순간도 기억이 난다.

그 때 산 그 책이 무려 초판본의 1쇄였다는 사실은 아직도 나만의 작은 자랑거리이다.

 

어쩄거나 저쨌거나 나이가 들면서 많은 것에 무뎌지고 그래서 웬만한 것에 별 감흥이 안생기는데,

아직도 이렇게 느낄 수 있는게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산문집의 제목은 <보다>였고,

앞으로 3개월 단위로 책이나 영화 감상 따위를 묶은 <느끼다>와 강연들을 모아 놓은 <말하다>가 순차적으로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쁘기 짝이 없다.

 

P.S

 

소설가가 소설이 나닌 산문집을 내는게 조금은 겸연쩍었던지

(원래 소설책 두서너권 낼때마다 산문집을 내기 했었는데 아무래도 이 사람은 소설가는 소설로 대중과 소통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고 하기엔 여기저기 기고나 컬럼 너무 많이 내긴 하는데 여튼 김중혁과 함께 소설가로써의 어떤 은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작가의 말에 어떤 사건이나 정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그 생각을 토대로 타인과 대화를 하는 것이야말로 시대를 온전히 살아가는 것이고 자신의 경우에는 생각을 정리하는데 있어서 쓰기만한 것이 없었기에 산문집을 내는 것이라고 썼는데 이 의견에 매우 동감하는 바이다.

 

요샌 정말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숨쉴틈 없이 쏟아지고,

그러다 보니 정작 아무것들에도 생각을 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살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어떤 정보든 10초 이상 뇌에 머물지 않는다.

심지어 업무를 할 때도 원래 옛날 회사에서는 비효율적인 공공 분야의 업무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하나의 문서를 최소 3명의 상사들에게 최소 5번 이상씩 대략 20~30번씩 검토 받고 고치고 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분석들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 업무와 정보가 온전히 내것이 되었다고 느껴졌었는데,

요즘에는 처리하여야 하는 업무의 가짓수가 많다보니 그때 그때 스치듯 지나가게 되고

그러다보니 지난번에 어떻게 처리를 했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 뭐. 그렇다구요.

 

 

 

Posted by 물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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