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방학이 끝나고 있다.
엄마 수술에 할머니 장례식,
새회사 적응에다 대학원 수업까지,
폭풍같은 상반기를 지내고,
임종을 못지킨 회한을 어느 정도 정리하신 아부지,
이제는 완전히 수술에서 회복해서 일상으로 돌아온 엄마,
여차저차 우여곡절 끝에 큰 업무 하나를 마무리하고 안정기에 들어선 새회사,
그리고 3.75의 아름다운 성적으로 마무리 된 대학원 학기,
마지막으로 준비하던 어떤 시험의 마무리까지(결과는 안나왔지만)
나쁘지는 않은 결과물들로 정신을 차리고 나니,
폭염이 지나가고 비와 함께 어느덧 여름의 끝이 훌쩍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래한 주체할 수 없는 여유 시간들.
내가 지난 대학원 1학기 마치고도 썼었지만,
걸핏하면 야근에다 주말근무인 회사를 다니며 대학원을 병행하는 것은
드래곤볼에 나오는 모래자루를 영혼에 매단 느낌인 것이라,
모래자루를 내리고 몰려오는 천근같은 시간을 주체할 수 없는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휴일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극장에서 하루 영화 2편을 보기도 하다가,
지난 광복절에는 하루 영화 4편 관람이라는 기염을 토하게 되는데,
(뭐, 1편만 조조로 극장에서 보고 나머지는 다운)
그 중의 하나가 <건축학 개론>이었으며,
또한 최근에는 순전히 인터넷의 호평들로,
<응답하라 1997>을 보게 되었는데,
뭐랄까,
1980년대를 지나 바야흐로 1990년대의 추억 판매 시대가 도래한 것인데,
건축학 개론도 그렇고 응답하라 1997도 그렇고,
그게 첫사랑이든 브라운관의 대중가수든 간에,
어렸을 때가 그리운 것은 무언가가 그렇게 내 마음을 뛰게하고 미치게 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세상을 너무 오래 살아서,
웬만한 것으로는 가슴이 뛰지도 열광하지도 않게 되버렸다.
그러니까 사람이 나이들수록 추억을 곱씹고 그리워하는 것은,
어떤 것에 열광했던 자신, 스스로의 모습,
소위말해 순수했던 자신에 대한 그리움이 아닌가 한다는 것이다.
형부가 돌아오면서,
집을 알아보고 차를 알아보고 있는데,
새삼스레 나의 사회적 지위가 와닿는 것이,
내가 서울 시내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이정도 집이거나,
혹은 사고 싶은 차를 막 살 수는 없구나하는,
물질로써 내 스스로의 가치가 환원이 되는게 눈에 보여요.
그렇다고 돈이 막 벌고 싶고 그런건 아니다.
그냥 뭐가 의미있나, 뭐가 중요하나...그러고 있는데,
자꾸 막 살기가 싫은 것이,
빨리 새 학기가 시작되서 이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삐 살았으면 좋겠다.
생각하면 삶이 무너지니까,
빨리빨리,
쫓기는 듯이, 삶을 뒤돌볼 겨를 없이 그냥 살아냈으면 좋겠다,
물론 가슴 깊숙한 곳의 이 허전함의 구멍은 어떠한 것으로도 채워질 수가 없이 갈수록 커지기만 할 텐데,
나중에,
언니네와 살림을 분리하고 조카도 더이상 나의 품이 필요없고
엄마 아빠 돌아가시고,
언젠가는 구멍안으로 육신이고 정신이고 다 휩쓸려 버릴때를
정신없이 바삐살다가 어느 날 문득 맞이하고 싶고나.
음.
방학이 2주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