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출근 이틀째.
뭐 이거저거 세팅하고 눈치보느라 정신 없음.

내가 사기업에서 전혀 일을 해보진 않았지만,
사기업에 감사는 많이 나가봤었거덩.
기업마다 문화 차이가 크더라구,
젤 사람 쫀다 싶은 곳은 L그룹이었고.

여튼 여기는 본사에서 로컬 브랜치를 만들었다기 보다는,
현지 기업을 인수해서 브랜치를 만든 거라서,
사실 본격 글로벌 기업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겠지만,
그래도 글로벌 기업이란 이런거구나하는 느낌이 좀 드는게,

출입증 발급받으러 보안실 갔더니 미쿡 사람이 앉아있어떠. -.-
출입문에 인사 담당자 사진이 걸려있는데, 미쿡 아줌마여떠.
인사팀에 전화하려면 국제 전화 해야되. -.-;;
근데 사무실은 우리랑 같은데에 이떠.
그리고 경비 처리 영수증 확인은 본사에서 하는데,
그것만 전담으로 하는 회사가 인도에 있데. -.-;;;
개네는 그럼 다양한 국가로부터 온 온갖 형태의 영수증을 다 보겠군.
뭐 이런 소소한 것 뿐만 아니라,

회사 경영에서도 오너 개인의 영향은 별로 없는 듯 하고
(오너라는게 있었던가?, 스티브 잡스도 애플에서 막 쫓겨나고 그랬었잖아.)

시스템 자체에 의해 체계적으로 잘 굴러가는 것 같드라구.
예를 들면 전에 회사도 교육 의무 이수시간이 있긴 했지만,
교육을 갈 수 있는 환경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주진 않았다.
나처럼 일많은 사람은 자리를 뜰 수 없으니 교육 기회를 가지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여기서는 교육 안보내면 관리자들의 근무 평가가 마이너스가 되서 꼭 보내야되는 거지.

야근도 거의 안한데.
그냥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일만 하면 되는거고.
일도 많은 거 같지 않드라고.
그러고보면 내가 정말 그간 빡세게 살았던거야.
머 할려고 그렇게 살았나 몰라.

그리고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가 굉장히 수평적이야.
팀장이나 상무도 팀원들한테 다 존대말 쓰고.
한국 기업 특유의 고압적이고 집단주의적 성격이 없는 듯.

여튼 완전 순수 글로벌 기업도 아니고 한국 토종 기업도 아닌,
이 회사는 참 특이한 것 같다.

회사는 역삼동에 있는데,
어찌나 건물이 삐까뻔쩍 한지. (뭐 몇개층만 임대해서 쓰는 거지만)
강남 빌딩들 중에서도 높은 편이라서,
휴게실 전망이 아주 좋아.
맨날 가락동에만 있다가,
삐까뻔쩍한 곳으로 다니려니 나랑 안맞는 곳 같아서 이것 참 마음이 불편하데.
아. 냉장고에 막 꺼내먹어도 되는 음료수가 들어있는 거는 좋았지.

뭐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전에 회사에서는 정말 일이 너무 많다는 것만 빼고는 
사람이든 일이든 내가 별로 어려울 게 없었는데,
새로운 곳에서는 모든 것을 눈치를 봐야한다는게,
나를 위축시키고 있긴하다.
전에 회사에서의 내가 워낙 안정적으로 자리를 잘 잡고 있었어서, 
그 간극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전에 회사에서는 내가 거의 모든 사람들을 도와줬거덩.
내가 도움을 구한 사람은 거의 없었지. 사실 그래서 힘들기도 했는데,
여기서는 일거수 일투족, 이를테면 화장실 위치,정수기 위치, 프린트하는 방법까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해야되니까,
그게 참 익숙하지가 않고 마음이 불편하고 해따.

근데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별로 내가 못났다고는 생각은 안해.
다만 직장에서 위축된다는 그 느낌 자체가 쩜 생소해서. -.-;;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한 3개월은 조급해하지 말아야겠다.

아직 이전 회사에서의 익숙함과 안정감, 사람들이 그립긴 하지만,
일단 새 회사도 나쁘지 않은 듯 합니다.

이직 과정에서 나의 징징거림을 들어주고 받아주고 의지가 되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말씀드립니다.

Posted by 물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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