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우미 여사님이 물고기를 주셨다. 
역시 집안에 나 말고도 움직이는 생명체가 있으니까 작으나마 생기가 느껴지긴 한다. 
지난번 구피는 1여년에 거쳐 3세대를 몰살시켜서 얼마나 갈진 모르겠지만.
지금 도우미 여사님은 어느덧 2년 가까이 집안일을 봐주시고 계신데
가끔 혼자 살면서 넘 사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귀찮아서 안하게 되는 집안일들 잘 해주셔서 돈 쓰는 것 중에 젤 안 아까운 것 같다. 

 
2. 
아부지가 최순ㅅ관련 뉴스에  무려 5년도 전에 단 댓글로다가 모욕죄로 형사 고소를 당했다. 
아니 아부지가 쓰신 댓글을 보니 딱히 욕설을 한것도 아니고 특히 고소인도 특정하지 않았고
그냥 세태에 대한 씁쓸한 단상을 표현하신 것이라 전혀 모욕죄가 아닌 것 같은데
댓글 제대로 읽어보니도 않고 합의금 장사하려고 법무법인이 싹다 고소한 것 같다. 
가뜩이나 성격이 나랑 비슷하게 예민하고 불안 기질이 강하신데다 연로하시기까지 한 아부지를
경찰서며 법원이며 들락거리는게 하는게 꽤나 걱정이 되서
걍 합의금 내고 말자 하는 생각이 아니든 게 아니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도저히 우리 집안에서 우리가 최순ㅅ 돈 벌게 해줄 순 없겠다 싶어
최악의 경우 벌금 200만원 내겠다는 임전무퇴의 자세로다가 경찰조사 진행하기로 했다. 
아부지에게는 이거 전혀 모욕죄 성립안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당연히 스트레스 받으셔서 잠도 잘 못 주무심. 
아부지 기제는 나랑 거의 비슷해서 얼마나 전전긍긍하셨을지 안 봐도 비디오임. 
아니 어떻게 범죄자가 선량한 시민 압박해서 돈 벌 수 있는 시스템이 가능하다니, 
이건 넘 부당한 거 아닌가. 
 
3. 
회사에서 일 더 안할 거면 나가라고 했다.
아니 내가 언젠가 영어 못해서 짤릴 줄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나가라고 할 줄은 몰라서 
상황을 받아들이느라 힘이 많이 들었다.
보스의 보스의 보스(혀기리급)과 미팅이 잡혔을 때
조셉 고든 래빗 닮은 영어 과외쌤이 아무래도 너 짜를려고  하는 것 같다고 애기할 때만 하더라도
아니 이 냥반이 웬 오바.....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잘릴 줄이야. 
아니 돈 더 많이 준다는 C사 버리고 여기가 안정적일 것 같아서 왔더니이게 무슨 난리야. 
그쪽은 그쪽 입장이 있으니 이 참에 끝을 보자는 각오로다가
최악의 경우 최대한 좋은 패키지 받고 나가는 것을 목표로다가
품위를 지키기 위해 동요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하고 있다.
첨엔 당연히 아이굽쇼, 시키는 대로 열씨미 하겠슴다...라고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것은 품위있는 방법이 아니고 과거의 내가 한 일을 부정하는 것만 같았따. 
실제로 작년까지만 해도 시키는대로 계속 일 더하다가 작년에 건강이 엄청 나빠졌는데 그걸 또 반복할 순 없지. 
내가 아무리 한국 지사에서 좋은 평가를 듣더라도 내 보고라인은 글로벌이고
그들이 바라는 바와 내가 할 수 있는 바가 다르다면 당연히 헤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니 내가 그거 안할 건 아닌데 그거 하려면 한국의 기여를 줄여야 되, 
그러면 한국 리스크가 높아져, 너도 괜찮고 한국 임원들도 괜찮으면 그때 하께...라는 기존의 입장을 계속 고수하는 중이다. 
자르려고 안달이 난 쪽은 그쪽이니 옆팀 팀장님이 어차피 시간은 나의 편이라고 했다. 
이제부터 길고 긴 협상을 시작해야겠구나. 사실 3년치 정도 주면 오케바리 하고 나갈건데..-.-;;;
위기 상황일 수록 품격이 정말 중요한 거 같다. 사실 품격을 지킬 수 있다면 진정한 위기 상황이 아닐 수도 있는 것도 같다. 
여튼 진짜 별일이 다 있네. 
올해는 증말 자궁도 잃고 직장도 잃고 고단하다 고단해. 
 
4. 
첨엔 이 애기를 듣고 기분이 너무 안 좋아서
어쩌다 이렇게 꼬였는지 과거를 찬찬히 돌아보았다.  
(1) 전 직장에서 이직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2) 여기가 아닌 C회사를 갔었어야 했나?
(3) 애초에 전전 직장에서 이직을 말았어야 했나?
(4)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했어야 했나?
(5) 애초에 대학교때 고시를 봤었어야 했나...
등등등...
결론은 순간순간 마다 나는 엄청난 고민 끝에 선택을 했꼬, 
모든 상황에서 나름의 최선을 했고
그 선택과 최선의 노력들에는 결코 후회는 없다라는 것이었따. 
내가 과거에 한 것 중 유일하게 후회가 되는 건
팀원에게 가스라이팅 당했을 때 내가 나 자신을 못 믿고 남들이 뭐라 그러는거에 홀라당 넘어간 부분이다. 
지금도 사실은 이 상황이 넘 황당하고 힘들어서 걍 나가야지 했다가, 
옆팀 팀장님이 아니 물미역님이 왜 나가냐고 그거 가스라이팅 당하신 거라고 말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정말 가스라이팅을 잘 당하는데
그게 내가 자꾸  최선을 다해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상담 선생님이 그랬다.
빈곤하고 허약한 자아가 매번 위기 상황에서 자꾸 발목을 잡아서
이번 기회에 좀 확실하게 정신 바짝 차리고 버텨보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직속 상사는 허구헌날 나에게 내가 내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으면 아무도 해주지않는다고 그랬지.
세상은 정말 냉정한 곳인데 내가 너무 나약하고 나이브하게 자란 것 같다.  
사실 내가 나름 이 업계의 탑 경력자로써
이렇게 허무하게 잘려나가고 소속없이 떠도는 걸 남들이 알까바 부끄러운게 가장 컸는데
뭐래...남들은 나한테 관심도 없고 내가 잘못해서 잘린 것도 아닌데 뭐래...
사실 특히 내가 무시하던 사람들 다 잘나가고 있는데 나만 잘리는게 가장 짜증나기도 했는데
뭐 다들 나름의 처세의 능력이 있는거니까....?
여튼 간에 이럴 수도 있는 거지 뭐.
내가 당장 먹을 것 없는 것도 아니고 정 안되면 편의점 알바 해야지 뭐. -.-;;;

Posted by 물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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