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음주 월요일 어디로 출근할 지 모르지만 이번 주초에 퇴사했다.
조용히 나가고 싶다는 소망은 코로나 사태로 회사가 재택근무를 시전한 관계로,
회사에 사람이 없어서 백만배 이상 성취되었다.
회사 안과 업계를 넘나들며 여러 건 잡혀있던 송별회도 코로나 때문에 줄줄이 취소했다.
내가 살면서 바란 소망 중에 이렇게까지 확실히 이뤄진 소원이 있었던가 말이다. -.-;
혹시나 했는데 팀원들이 말로는 섭섭하네 아쉽네 믿을 수가 없네 어쩌나 하더만, 선물 하나 없더라.
물질로 표현되지 않는 감사는 별반 크지 않은 법이다.
아니 뭐 대단한게 아니라 편지 한 통이라도 줄 수 있는 거 잖아.
사실 말만 그렇치 애들은 그렇게 섭섭하지도 않은 것이다. 애들은 정말 나랑 안 맞는다.
역시 퇴사하길 잘했다.
만 팔년의 기간동안 이 회사에서 내가 맡은 업무의 체계를 잡고 나름 업계에서 빠지지 않게 만들어놨는데 다 부질없다.
업계 탑 티어가 애기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용병이라구.
어디든 돈많이 주는데 가서 일하면 되는거라구.
그래도 재택 근무 와중에 회사를 나온 주변 동료직원들이 간간히 진심으로 배웅해주고 해서 마음이 좀 풀렸다.
코로나 사태 좀 풀리면 따로 날 잡아 보자고들 하는데 과연 그 날이 올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 말을 하는 순간의 그들은 확실히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퇴사하고 집에 있는데 회사 생각이 하나도 안났다.
지난번 공뭔 한다고 퇴사했을 때는 일중독 상태여서 금단 현상 때문에 괴로웠는데,
이번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논문에 대한 압박도 크고 회사에 미련도 남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난 8년 세월이 징글징글하다. 상사와도 팀원들과도 진작 좀 떨어져 있어야 했다.
결이 좀 다르긴 하지만 나의 정신 건강에 몹시 해로운 존재들이었다.
B회사 측에서는 한동안 연락이 없어서 정리된 줄 알고 A회사에 집중하는데 퇴사한 날 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H/R내 임원 채용 전담 부서의 미국인 임원이 연락을 해왔다.
원래 나를 담당하던 H/R 직원은 한국인이었는데
그 다음에 싱가폴 사람이 연락을 해왔고 이번에 연락해 온 사람은 미국인 앵글로 색슨이었다.
인종에 따라 하이라키 확실한 거 보소. ㅋㅋㅋ
여튼 자기들이 매일같이 나를 너무 괴롭힌 것 같아서 나에게 좀 시간을 주고 싶어서 연락을 안했다며,
담주에 만나 B회사의 비전과 전망을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주변에 물어보니 일단 애기는 들어보라고 해서, 이번 주에 만나자고 했다.
그 와중에 다시 헤드헌터들에게 임원급 포지션 나왔다고 몇 통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다른데 가기로 했다고 했다가 나중에 궁금해서 어디냐고 물어봤더니 B회사더라.
내 포지션으로 아마 새로 리쿠르팅 진행하는 것 같았다.
그럼 나는 B회사의 앵글로 색슨 아자씨를 왜 만나는 거지. ㅎㅎ
B회사가 A회사 연봉의 2배 주면 갈껀가.....알 수가 없다.
A회사도 정말 좋은 회산데.
싱가폴 아저씨 말대로 B회사 오퍼가 나의 일생 일대의 기회인걸까.....
미래는 알 수가 없는데 문제는 이나이 먹도록 내가 뭘 원하는 지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