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잘것 없는 인생 와중에서도 어쩌면 중요한 분기점이 될 어느 날 오전,
나는 어느 빌딩 1층의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출입문에 붙은 서머레디백 수량 소진 공지문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대란이라면 말이 결코 과하지 않았던 스타벅스 서머 레디백의 인기 현상은
나처럼 게으르고 단순한 인간에게는 참으로 이해되지 않은 면이 많다.
별 것도 아닌 대체품이 널리고 널린 미니 여행 백하나를 가지려고,
사람들이 줄기차케 커피를 마시고 새벽에 줄까지 선다는 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지나치는 스타벅스마다 어김없이 줄이 늘어선 걸 보노라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조카를 보면 부족한 것 없이 자란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라떼는 말이야,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음에도 가정내 자원이라는 것이 애 셋을 풍요롭게 기르기에는 바틋했기 때문에,
애정이든 물질이든 항상 무언가의 결핍에 시달렸던 것 같은데 조카를 보면 도통 결핍이라곤 없어 보인다.
조카에게 갖고 싶은 거나 먹고 싶은 거를 물으면 시원하게 대답이 나오는 법이 없다.
양극화가 심해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예전에 비해서는 물질적으로 대단히 풍요로워진 사회라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나 어렸을 때만 해도 해외 여행이 대단한 자랑거리였고 바나나가 엄청 귀한 음식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시대를 상상조차 하기 어렵지 않느냐 말ㅇ디ㅏ.
하지만 사람들이 소비를 하는 것은 단순히 신체적 물질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만은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자아 실현까지는 아니더라도 소비 행위에는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사회적 욕구를 실현하는 의미도 있다.
이미 생존을 위한 소비는 풍요롭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소비 행위에서 이같은 사회적 욕구의 의미가 더욱 강해지고,
그러다 보니 서머 레디백에 줄서고 연돈에 줄서고 한정판에 몰리고
소비를 통해 나 자신을 특별하게 느끼고 싶고하는 걸 보면
세상은 갈수록 화려해지는데 사람들은 갈수록 외로워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