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

카테고리 없음 2023. 9. 3. 21:57

오늘은 꾸역꾸역 카페에서 한 여섯시간정도 개겼는데, 

놀랍게도 논문을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여섯시간 동안 뭘했냐 하면, 

우선 마지막으로 쓰던 논문 파일을 도통 찾을 수가 없어서, (무려 한달전에 쓰고 열어보질 않다보니..-_-;;;)

향후 파일을 못 찾아서 시간을 지체하는 일이 없도록 (애초에 매일 조금씩이라도 썼다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만서도...)

노트북과 원드라이브 폴더 정리에 상당한 공을 들였고, 

논문 작성에 할당 가능한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별반 있지도 않은 9월 스케줄을 구글 캘린더에 정리하고

(다시 말하지만 애초에 따로 정리해둘만한 스케줄이 엄섰음. 괜히 가족들 생일 표시 정도랄까...-_-;;;)

구인구직사이트에서 괜히 이직 정보를 알아보고 

당연히 유튜브와 커뮤질을 하다보니 시간이 후딱 지나있었다. 

여섯시간 동안 삐대면서도 단 한줄도 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니, 

몇년째 취업 못하는 백수내지는 안풀리는 전업 작가 같은 막막한 기분이 들면서

역시나 나는 함부로 회사 관두면 최소한의 사회 활동의 접점이 사라져

순식간에 히키코모리가 될 사람이므로 회사일을 꾸여꾸역 버텨야지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 하루도 낭비한 이 기분. 

왜 이렇게 논문이 안 써질까. 

일단 쓰라고 하는 압박을 넣는 외부적 유인이 없다는 점이 당연히 가장 큰 문제다.  

누가 기한을 주고 언제까지 뭐 써라고 하면 어떻게든 뭐라도 쓸텐데. 

이건 뭐 내가 타고난 게으름뱅이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내가 더 걱정스러운 건 사실 나에게 사실 논문으로 쓸 정도의 컨텐츠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뭐 외부적으로 압박을 받아 꾸역꾸역 썼든 어쩄든, 

석박사 논문은 내가 정말 문제 의식을 느끼고 세상에 내가 하고 싶은 애기를 한거거덩. 

지금 쓰는 주제도 분명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애기라고  생각하거덩. 

근데 이렇게 잘 안써는걸 보면 

내가 하고싶은 애기란게 사실 막연하고 뜬구름 잡는 애기로 사실상 실체가 없거나, 

혹은 내가 생각한 것을 글로 풀어낼 정도의 지식과 소양이 부족하거나, 

혹은 둘 다인 것 같아 많은 걱정이 든다. 

말하자면 나에게는 지도교수님이나 지도위의 도움없이, 

혼자서 논문 생산이 가능한 역량 자체가 없는게 아닐까?

애초에 논문을 쓰겠다는 거 자체가 내 스스로에 대해 뭔가 대단히 착각하고 있는게 아닐까?

업계 사람들이나 교수님들이 간혹 나에게 해주는 좋은 평가들은

사실 립서비스나 겉치레고 나는 진짜 세상 찐따이자 등신인게 아닐까. 

지난주에도 업계 사람들 모아 놓고 하는 교육 과정 운영하는데에서 특강 하나 해달라고 부탁이 들어왔거덩.  

근데 내가 하도 상사들에게 쓰레기 취급받고 업계 돌아가는 사정이나 감도 떨어지고 해서, 

자신이 없어서 안하겠다고 여러차례 거절했는데

하도 간곡하게 꼭 내가 해줬으면 좋겠다고 실무자 뿐 아니라 팀장까지 간곡히 부탁하는 바람에, 

진짜 자신 없는데 일단 하겠다고는 했단 말이야. 

근데  이거는 교육 컨텐츠를 아예 새로 만들어야 하는거고 경험이 중요한거라 진짜 자신이 엄거덩.

나는 자기객관화를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데,

내가 내 경력과 업무 역량에 대해 매우 큰 착각을 하고 살았던 것 같다.

난 원래 사회부적응자인데 왜...내가...일을 잘한다는 착각을 하게 된거지...

진짜, 나는 박사가 되면 막연하게 뭔가 기계처럼 논문 생산 가능한 슈퍼파워같은게 막 생기는 줄 알았는데,

역시 나는 찐따가 틀림엄섰던게야.  

논문은 뭔 논문이야! 때려쳐! 다 때려쳐!!! 

 

상담선생님은 내가 내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너무나 확고하다고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음. 

글구 내가 상황을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거래. 이거 두개는 상반되는 거 아닌가. 

요샌 상담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고...

뭐든 다 무슨 의미냐 싶고..

왜 사냐 싶고...

다시 말해 나의 남은 생이란 뻔하기 짝이 없다. 

평생을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는 것도 보자로,

지속적인 정신적 신체적 능력의 손상을 경험하는 비참함까지 더해져

외롭고 쓸쓸하고 비참하게 늙어가기만 할 뿐일텐데 이런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말이다. 

약이나 먹어야겠다. 

처방받은 정신과 약들을 술 먹느라 안챙겨먹어서

집에 쌓여있어서 가끔 증상이 힘들 때 먹는데 

이렇게 먹어도 되는걸까 싶기도 하지만

오늘은 무슨 약을 먹을까. 우훗훗. 

역시 이십년전에 섹스앤시티에서 잠깐 스쳐가는 엑스트라인, 

아이스크림에 프로작 뿌려먹던 혼자사는 노파가 나의 운명인것이야!

이렇게 인생이 뻔한데 굳이 살 필요가 있는것인가. 

P.S 1.

금주 01일차, 성공!

P.S 2

장강명 신간 나왔더라. 

초반 몇장만 읽었는데도 엄청 재밌었음.

장강명에 대해 호불호는 있을 수 있겠지만 

장강명만큼 부지런한 작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은 그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성공한 작가도 이렇게나 열씨미 사는데 난 도대체 뭐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네. 

P.S 3. 

내일부터는 반드시 평일 2시간, 주말 6시간을 논문 쓰기에 할당하겠습니다. 

Posted by 물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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