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Prologue
그러니까 어딜 좀 가고 싶었다.
아무리 여행을 싫어한다지만
그래도일년에 한두번은 출장 내지 여행을 가거나 하다못해 회사에서 워크샵이라도 가서 바깥 바람을 쐬곤 했었느데
코로나가 시작되고 도통 어딜 가본적이 없다보니 좀이 쑤셨다.
게다가 언니가 코로나 고위험 직군에서 일하다보니
언니 떄문에 가족 여행조차 가기가 어려웠다.
혼자서라도 부산을 갈까 제주도를 갈까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보다가
어찌어찌 알게된 잘 모르는 사람(온라인 쇼핑몰 사장 A씨)이
이번주 수요일에 자기는 지금 속초 왔는데
기분전환하러 속초를 정말 자주간다고 속초가 그렇게 좋다구 하더라구.
속초라면 그래도 서울에서 세시간 안쪽에 끊을 수 있어서 그닥 멀지 않고
차도 가져갈 수 있어서 여러모로 괜찮은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그 사람이 추천해준 숙소와 오마카세 집을 알아봤는데
다행히 바로 다 예약이 가능해서 회사에 휴가도 내고 긴급 속초 여행을 추진했다.
1. PT 5회차
속초로 떠나기로 한 금요일 아침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부슬거리는 비를 보니 귀찮음이 엄습하며
숙소 위약금 내고 걍 가지 말까 싶기도 했는데 좀처럼 없는 의지를 긁어 모아
아침에 일어나 짐을 대략 싸서 차에 넣어두고 PT를 받으러 갔다.
트레이너가 인바디 재보자고 해서 재봤는데 체지방 -3Kg, 근육 +1kg, 체중 -1kg 정도였다.
비록 몸무게가 별로 줄진 않았지만 체지방 빠지고 근육 늘어난 거라
완전 잘했다고 평소 시큰둥한 태도와는 달르게 엄청 칭찬해주었다 .
PT 시작한지 2주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술을 절반 이하로 줄이고 식단도 신경을 쓴거에 비해 몸무게가 많이 줄지는 않는구나 싶었는데
트레이너가 칭찬을 해주는 걸 들으니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었음.
기분탓인지 모르겠지만 체력도 좀 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2. 도우미 아주머니
PT를 마치고 샤워를 하러 집에 잠깐 들렀다.
예정대로 도우미 아주머니 오셔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나 있으면 불편하다고 해서 오시는 날에 보통은 나가 있는데
오늘은 샤워를 하러 어쩔 수 없이 들렸다.
샤워를 마치고 나머지 짐을 챙겨서 차에 싣고 자전거도 실었다.
숙소가 호수 근처에 있고 자전거 길이 잘되어 있다고 한데다
저녁에 술 먹으면 운전을 할 수 없으니 자전거를 가지고 갈 참이었는데
정말 이 부분이 내 인생에게 보기 힘들정도로 매우 잘한 결정이었따.
여튼 얼레벌레 자전고 싣고 하다 보니 빠뜨린게 있어서 다시 집으로 올라갔는데
아주머니는 여전히 청소하고 계시고
생전 첨보는 어떤 아저씨가 우리 집에서 청소기를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니 나 PT 마치고 올떄 나랑 같이 엘베 타고 올라온 아저씨였어. 난 나랑 같은 층에서 내리길래 옆집 사람인가 했는뎅)
넘나 황당했지만 넘나 자연스럽게 청소기를 돌리고 있는데다
아주머니도 딱히 설명도 없으신지라
황당한 내가 이상한가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서
나가면서 아주머니에게 누구시냐고 물어봤더니
남편인데 오늘 비와서 차도 태워주고 청소기도 돌려주고 한다는거야.
아니, 아니, 그래도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나한테 말도 없이 남편에게 청소를 시킨다니
넘나 황당해서 화를 내야하는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좁은 집에 부부가 같이 있는 상황에서 내가 쪽수로 밀리기도 하고 뭐라 하기도 그래서
일단 웃으며 알겠다고 하고 차를 몰고 속초로 향했는데
가는 내내 넘나 찜찜한거야.
그래서 걍 청소업체에 조용히 말해서 사람 바꿔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칭구에게 물어보니까 좀 황당하긴 한데 그럴 수도 있지 않냐고 하더라.
칭구 말 듣고 보니 긍가 싶어서 어차피 맘에 백퍼 차는 사람 만날 수는 없고 하니
그냥 그러려니 넘길까 싶기도 했다.
속초에 도착해서 홍게 라면 열씨미 먹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전화를 다시 하셔서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 남편도 걱정 많이 하고 있다,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청소도 1명이 하도록 되어 있어니 업체에 애기안했으면 좋겠다라는 요지로 양해를 또 구하셔서
일단 웃으며 괜찮다고는 했는데 도통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3. 홍게 라면
아침 거르고 PT 받고 도우미 아주머니 신경쓰고 속초까지 세시간이나 운전하고 와서
몹시 피곤하고 배가 고팠지만
저녁에는 온라인 쇼핑몰 사장 A씨가 추천해준 오마카세 집을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점심은 간단히 속초 특산물 홍게 라면을 먹기로 했따.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몹시 뿌듯한 마음으로 차에서 자전거를 내리고
도일이 추천해준 음식점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서울은 비가 왔지만 속초는 맑디맑은 날씨에 오후의 떙볕이 작렬하는 시간이었고
길이 익숙치 않아 매번 네이버 지도 펴고 가다보니 가뜩이나 시간도 많이 걸린데다가
음식점으로 가는 길은 뭔가 커다란 다리 밑으로 내려가고 해야 하는 몹시 복잡한 길이라서
네이버 지도상으로는 자전거로 13분이었건만 거의 40분이나 걸렸다.
넘나 힘들어서 몇번이나 근처 아무데서나 먹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도일이가 형에게도 물어봐서 알려준 것이라
거길 안가면 수고로움이 무산되므로 꾸역꾸역 떙볕아래서 페달을 밟았따.
(이런게 바로 쓸데없는 것에 목숨거는 전형적인 특징이다)
40여분만에 식당을 발견하고 뙤약볕에 발갛게 익은 얼굴로 식당에 들어섰더니
식당 관계자분들이 모여 냉면을 먹고 있어서 라면 내오는게 시간이 좀 걸렸고 당연히 라면도 맛이 없었다.
웬지 맛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어서 전혀 실망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