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형같은 논문 가방을 지고(약 10kg 추정) 건강검진을 하러 새벽같이 집을 지났다.
그래도 요즘은 아침 7시 전에 집을 나와도 깜깜하지 않고 어슴프레 새벽이 밝아있다.
봄이 어느덧 가까워졌왔다.
선릉에서 건강검진을 간단히 하고 지하철을 타고 잠실역 롯데 시네마에서 <작은 아씨들>을 봤다.
<작은 아씨들>은 어렸을 때 못해도 한 30번쯤 읽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에이미가 조의 원고를 불태운 사건이나 베스의 죽음만큼은 기억에 선연하고
대부분의 독자가 그렇듯 씩씩한 조에 감정이입하며,
병약한 베스에 안타까워하고 에이미를 재수 없어 하며 메그에 대해서는 평범한 일상적 안정감을 느꼈덧 듯 하다.
워낙 여러번 읽었기 때문인지 그닥 끌리는 출연진이나 감독도 없어서 도통 볼 생각이 없었는데
친구가 지나가듯 언급했는데, 딱히 나보고 보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워낙 남의 말을 참 잘 듣는 나인지라 굳이 찾아봤네.
영화 초반부에는 배우들이 내가 상상했던 소설 속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적잖이 당황했따.
메그는 맏이 답지 않게 너무 어려보였고
조는 톰보이 이미지 답지 않게 너무 선이 가늘었으며,
베스는 병약한 이미지는 커녕 그냥 평범하기 짝이 없었고
에이미는.....에이미. 어쩔거야..
막내라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캡틴 마블을 했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 떡대와 강인한 페이스에,
자매들 중 가장 굵고 낮은 허스키한 목소리까지 도저히 영화에 몰입할 수가 없었따.
차라리 맏이 메그 역을 했던 배우가 에이미 역할을 하는게 나을 뻔 했따.
자꾸 보다보니 다른 배우들은 어찌어찌 동화되는 듯 했는데
에이미의 떡대와 중저음 보이스만큼은 정말 도저히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나이 들어서 이 이야기를 다시 접하면서 깜짝 놀랄만큼 다르게 다가왔떤 건,
아씨들보다는 나이많은 주변의 여성들에 훨씬 더 감정이입을 하게 되더란 것이다.
아씨들의 연애사내지 갈등이나 성장은 그냥 완전 남의 애기고 엄마가 느꼈을 감정이랄지,
특히!!!! 그냥 기능적 역할을 하는 주변 인물에 불과한 대고모라는 존재에 완전 감정 이입하면서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결혼도 못하고 혼자서 늙고 고독하게 사는 돈많은 대고모는 놀랍지 않게도 성격이 괴팍하기 짝이 없지만,
조카들에게 소일거리 시키고 용돈 쥐어주거나 조카들 결혼식 같은 집안 대소사에 큰 돈을 쾌척하거나,
조카 유학비나 유럽 여행비 대주는 등 경제적 지원을 통해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는데,
본질적으로 내 미래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따.
대고모님은 어마무시한 부자기라도 했찌 나는 뭐 소소할 것이므로 그만한 영향력도 없을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일단 첫학기 대학 등록금은 내주는 것으로 혼자서만 확정하긴 했음.
여튼 영화는 그냥저냥 소소히 볼만 했지만 전반적으로 페미 한 스푼이 끼얹어진 느낌이라 약간 찜찜했음.
그리고 나는 정말 여자들간의 친목과 갈등이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다.
사실 트라우마 수준이라 영화에서 허구헌날 여자들끼리 모여 있는 것만 봐도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혹시나 오해할까봐 말하지만 여자라서가 문제가 아니라 남자들의 관계가 더 낫다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여성 일반은 남성 일반들이 그렇듯이 아무런 죄가 없다.
그냥 내가 이 회사에서 겪어 온 여자들의 관계가 워낙에 지옥같았다는 것이다.
물론 디아블로급의 소시오패스 팀원이 원인이었지만 원인이 밝혀졌다고 해서 겪었던 나쁜 경험의 기억들이 눈녹듯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지난 구정 때 있었던 자전거 전복 사고 이후 나는 자전거 탈 떄는 가로수만 보면 움찔움찔하는 버릇이 생겼다.
가로수는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서울에는 가로수가 참 많긴 하더라.
여튼 영화는 여자들끼리 모여 있꺼나 간혹 나오는 남자들은 대부분 연애 상대였는데
연애 이야기도 사실 별로라 하므로 영화가 전체적으로 좀 불편했떤 것 같다.
유일하게 영화 중반 이후 베스와 옆집 할아버지간의 애정어린 관계만큼은 눈물이 찔끔났따.
여튼 버전이 가지는 특별하고 압도적인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렸을 적 추억 보호차원에서 안 보는게 나을 뻔 했음.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천형같은 논문 가방을 지고
미세먼지와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대기에 마스크는 커녕 입을 헤하고 벌린채로 따릉이를 타고 논문을 쓰러 스벅에 왔다.
논문 2차 지도위가 3월말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데 이직 떔에 고민하느라 요 몇주 논문을 통 못 썼다.
미세먼지가 심하긴 심한지 따릉이 찾아 헤매이고 따릉이를 타는 동안 입에서 먼지맛이 계속 났다.
스벅에 도착해서 음료 12개 마시면 나오는 무료 쿠폰으로 평소에 못 시켜 먹는
시즌 메뉴! 딸기요거트어쩌구 하는 것을 주문했다.
허구헌날 제일 싸고 칼로리가 제일 낮다는 이유로 아아만 시켜먹다가 무료 쿠폰으로 먹는 딸기 요거트 어쩌구는 참 맛났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