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흣.

카테고리 없음 2011. 7. 27. 00:45
1.

XY염색체로써 최소한의 여성성에 대한 자각은 하면서 살아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때,
일년에 한두번정도 나는 패션 잡지를 사곤 했다.
화려한 미녀미남으로 도배된 휘황한 기사들을 읽고 있노라면
실제로도 잠시나마 여성성이 한층 배가 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여튼 패션잡지에 경망한 기사들 중 빠지지 않는 꼭지 중의 하나가,
소위 'hot guy'로 불리는 일반인 남성들을 소개하는 코너이다.
잡지의 주 구독층인 이삽십대 여성들이, 
뭐 이정도면 내 신랑감으로 괜찮지 않을까라고 한번쯤 생각해도 무방한, 
적당한 외모와 경제력과 직업과 패션 감각을 갖춘 남자들을 소개하는 코너가 왕왕 있어와따.

그리고 마침내,
우리 회사 남자 직원 하나가 모 패션 잡지의 그런 종류의 꼭지에 실리는 일이 발생하고 만 것이다.
사실 우리 회사는 몇년 전 큰 규모의 합병 절차를 거쳤고,
합병전 각각의 회사에 있었던 사람들끼리는 사실 아직도 서로 데면데면한데,
패션 잡지에 실린 사람은 합병전 다른 회사에 있던 사람이라서,
그 사람은 잘 모른다.
근데 오늘 우연히 그쪽 부서랑 밥먹을 일이 있어서,
어멋.그 부서에 이 사람 잡지나왔던데요...라고 애기했더니,
그쪽 부서는 다들 모르고 있었나바.
내가 알려줬더니 다들 신기해하면서 비웃음 일색이었다.(사진이 좀 비호감으로 나왔다)
여튼, 그 꼭지에는 자신이 하는 일과 여자 이상형 등의 신변잡기에 대한 한페이지짜리 간략한 인터뷰도 함께 실렸는데,
가관이야. 가관.

별거 아닌 우리 회사를 어떻게든 번듯한게 보이게 하려고,
기자가 공들인 티가 역력하나 뭐 현실은 시궁창인 것을 다 아는 우리 회사 사람들로써는 자조적 실소만이 흘러나올뿐이었다.

여튼 이삽십대 여자들의 환상을 채워주기 위한 패션잡지의 문체라는 것이,
얼마나 한없이 가볍고 허망한 것인지 다시한번 깨닫게 된 것이다.

2.

몇번 애기했다시피,
회사에서 아이패드 하나를 주워왓다.
아이패드에서 내가 가장 열심히 쓰는 앱은,
KT 올레 매거진이다.
여성 잡지, 남성 잡지, 여행잡지, 자동차 잡지, 디자인 잡지, 인테리어 잡지 등,
다양한 분야의 잡지 몇개월 분량을 무료로 다운 받아 볼 수 있다.
(아이패드의 최고 효용은 잡지 볼떄와 웹툰볼떄인거 같다)
여튼 그리하여 다양한 종류의 잡지들을 다운받아서 열심히 보고 있는데,
나는 정말 잡지가 너무 좋은 것 같다.
구독층의 욕구를 겨냥한 휘황하기는 하나 얄팍하고 공허한 문장들과 세려된 사진들이,
정말 읽기 좋고 흥미롭고 시간잘간다.
특히 여성들이 주된 독자인 패션잡지와 인테리어 잡지는 알량한 허영심을 자극하기 위한, 
죽은 문장들로 가득차있다. 보고 있노라면 재미있긴 하다. 

3.

요새 읽고 있는 <지식인의 서재>라는 책이 딱 그 잡지들 수준이다.
잡지들은 구독자들이 겉치레에만 신경쓰는 허세녀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도록
적당한 문화적 허영심 충족을 위해,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인터뷰 기사들을 한 꼭지정도씩은 구색을 갖추는데,
지식인의 서재가 딱 그런 잡지들에서 그런 꼭지들만 모아놓은 수준이다.
대대적인 홍보 활동을 전개할때나,
사회 저명 인사들의 서재를 소개하면서 빤딱빤딱한 고급 재질에 올컬러 인쇄를 해서 만칠천원에 팔아먹을 떄부터, 
그냥 이런저런 시류에 영합한 기획 도서임을 알아봤어야 했다. 

책을 사랑한다며
책이 가득 꽂힌 사람들의 서재를 책으로 소개하면서, 
이정도 밖에 담아내지 못하다니. 

형편없다.

이 책이다.

Posted by 물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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